Archive for July, 2008

서태지가 불쌍하다 2

Sunday, July 27th, 2008

1992년. 그가 세상에 나왔다. 자못 심각한 얼굴의 ‘아이들’도 대동하고 무소불위의 삼위일체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음악지도를 바꾼 서태지.

내가 처음 그에 대한 접점을 만들었던 것은 3집이었다. 통일을 노래한 ‘발해를 꿈꾸며’를 들으며 머리에 뭔가 맞은 듯한 느낌을 가졌다. 기억하기로는 당시 그의 ‘통일 염원’은 그저 상업적인 몸짓에 다름아닌 것으로 평가 받았던 것 같다. 팬들이야 응당 엄청난 성원과 지지를 해 주었겠지만 대중과 매체는 인색했다고 할까… 참고로 그 때는 김영삼 정권 초기였다. 당시 통일이란 말은 어떤 취급을 받았던가… 하지만 난 그의 통일에 대한 접근이 좋았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방식으로 그저 소박하게 자기가 잘 하는 음계의 나열로 접근한 그 방법. 모든 길은 다 로마로 통하니 그저 자기가 맘에 들고 잘 갈 수 있는 길로 가겠다는 그 방식과 생각이 옳아 보였고 부러웠다.

이후 2집도 사고 4집으로 이어가는 등 그의 음반은 거의 모두 ‘구비’ 하는 수준으로 좋아하기에 이르렀고 각노래에 내 아이튠스 별점도 매우 후하게 매겨졌다.

은퇴와 컴백을 반복하면서 독집으로 세 장의 앨범을 추가 했으나, 그에게 ‘문화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미디어에 의해 부여되어 가는 그 즈음, 갑자기 서태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돈을 얼마 벌고 몇 년에 한번 던지듯 내 놓는 앨범의 함량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서가 아니다. 사실 완성도는 그에게 당연히 기대해야 하지만 그가 구축한 대한민국 음악 속 위치는 사실 천재적인 음악가로서라기보다는 당시 시대가 요청한 부분에 가장 근접한 형태로 이뤄졌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음악적 완성도는 그다지 내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내 기대는 질 좋은 음악(도 중요하지만)보다는 그가 갖는 사회적 발언권이었다. 9시 저녁 뉴스의 최초 뉴스에 오를 수 있는 그의 영향력은 결코 그 혼자 구축한 것이 아니다. 사회가, 대중이 그에게 보낸 직간접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지지를 오로지 컴백 앨범 판매고로만 확인하고 몇 달의 활동만으로 갚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http://link.allblog.net/6774397/http://raonsky.com/tt/510

오늘 15주년 앨범이 발매되는가 보다. 어떤 내용일지보다는 얼마나 머무르다 갈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소박한 한 청년일 뿐이라고 강변하며 그저 사랑하는 팬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렵게 피 흘리며 날선 칼 만들어 보호하고 끝내 담덕 손에 쥐였더니 난 그 정도가 아니라고 내 빼는 모양이랄까… 서태지. 넌 쥬신의 왕이란 말이다.

(일부 맞춤법과 어투 수정)

위 글을 쓴 게 작년 11월 29일이다. 오늘 읽은 http://ozzyz.egloos.com/3840170 이 글을 읽다보니 생각나서 다음 검색을 해 봤다. 허허… 내 글은 안 보이고 펀글이 보인다. 묘하네. 펀 글이라니… 하긴 당시 위 글 쓰고 해당 카페 접속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어쨌든 펀 글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할 것 같은 감정?) 과 아련한 기분 좋음이 겹치는 ‘이 기분’이란… ((지난 목요일을 기점으로 당당히 공부해서 쏟아 낼 수 있게 됨을 다시 한번 감사할 수 밖에. 앗싸! 3년만 기둘려줘~))

블로거 오지 ((http://minoci.net/548)), ((이전에 언급한 내용))의 위 블로그는 댓글이 많이 달릴 수 밖에 없는 글이다. 이슈가 될 것임 틀림없는 내용이며 멍석을 깐 마당이 또한 자체로 이슈다. 답글이 주르륵 달리는 것은 그 블로그의 특성이니 굳이 트랙백을 달아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ㅎㅎ

서태지. 15주년 앨범에 이어 새 앨범이 나온단다. ‘나온단다.’, “나온단다.” 큰 따옴표까지 넣은 것이 지금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방법이다. 도대체 대우 자동차는 뭐야. RC 자동차 취미에 GM이 스폰서로서 도움이 되었나, 설마?

‘신한과 함께 한다는’ 배용준의 “큰 성공”-유재석, 이건 또 뭐야! 큰 성공이라니…-은 바로 돈 얘기다. 기백 억을 1년에 번다지. 이 정도 돈 가지면 남한테 아쉬울 소리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서태지. 그 정도는 아니어도 역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왜… 왜 대우 자동차냐, 서태지?! 제길, ‘큰 성공’, 따라 쓴다만 역겹다.

조영남. 노래만 들으면 눈물 빼는 실력. 그러나 손뼉치며 넘어가는 그 과장된 행동 ((나중에 계산 된 것이었음을 인터뷰에서 밝힘))이 여전히 첫번 째로 떠 오르고 가정사에 굴곡이 졌다는 대목에서 인상이 찌푸려지며, 이젠 한국에 정착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단계. 가수, 화가, 딴따라, 입담 등 빠지지 않는 ‘개인기’가 역시 고금을 막론하고 연예인에게는 필수이자 밥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화려한 ‘업적’을 뒤로 하고 ‘이제는 라디오 시대’를 외치며 오직 오후 라디오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의 조영남.

서태지. 영상만 ‘뛰지말고’, 입심도 늘었는지 보여줘. ‘별밤지기’ 정도만 된다면 16년 전 탄생과 그 영광을 평생 내 청춘의 소중한 기억으로 돌려 놓을테니… 아마도 입심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에서 언냐들한테 전수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Test

Wednesday, July 23rd, 2008

Test
by WordPress on iPhone

아이폰용 워드프레스가 나왔다. 어제 나온 것 같은데 계속 에러만 뱉어낸다. 요즘도 이런 어플이 있나 싶었지만 역시 한글이 문제였다. 영문으로 ‘Test’라고 쳐 올리니 바로 올라간다.
with Ecto on Mac OS X

거대한 발걸음; 아이라이프를 보내며…

Thursday, July 10th, 2008

1990년대 후반의 웹 열풍에서 오늘 날 플랫폼으로서의 웹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리어 2001년 발표된 디지털 허브 전략과 파워맥 G4 큐브 발표는 아이맥에서 시작된, 미적 감각이 극대화된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이어가려는 애플의 전략이다, 라고 평가하는 것이 당시 분위기를 잘 반영한 분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넷은 이러한 하드웨어의 판매를 위한 날개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이런 애플의 모습은 70년대 개인 컴퓨터 시대를 열어 80년대 대중화된 개인 컴퓨터 시장을 활짝 만개시킨 애플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당연한 귀결이고 이후 비컴퓨터 기기 분야에서 커다란 성공으로 자리매김한 아이팟으로도 이어지는 애플의 비약적인 재기 모습입니다. 이후 하드웨어와 디자인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재료가 바로 애플과 아이팟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혹 iTMS(2003)를 아이팟 성공의 첫째 요소라고 보는 분석이 있지만 이것은 ‘달 대신 손가락’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팟의 성공은 이미 2001년 발표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애플의 거대한 전략, 디지털 허브의 단초로서 아이팟은 등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발표된 디지털 허브는 지금 시각으로 본다면 매우 당연한 일상이지만 당시에는 애플의 하드웨어 판매를 위한 선전 문구라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맥 오에스 텐 이전부터 디지털 환경을 준비하는 모습-아이무비(맥오에스 8, 1999), 아이튠스(맥오에스 9, 2001)-을 고려할 때 이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닙니다.

아래 비디오 링크는 2001년 5월에 발표된 아이북 광고 클립입니다.

아이북 광고 중에서 유명한 이 광고를 보고 저 빛나는 흰색 애플 마크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음악과 사진, 비디오 클립을 엮어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광고 주인공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군요!). 위 광고는 디지털 허브 개념을 손에 잡힐 듯한 일상으로 잘 포착하여 사례화 시킨, 잘 만든 광고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하드웨어가 여전히 중요해 보이고 그 매혹에 못 이긴 구매 행동을 자연스럽게 합리화 시키기 위해 미디어 속 주인공과 나를 일체화하는 경험을 선사해 주기도 한 광고였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디지털 허브 전략을 이어가며 애플은 2003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라이프를 발표합니다. 당시 맥 오에스는 10.1이었습니다. 아이라이프는 이름 그대로 우리 일상에 그대로 스며들 듯 사용될 수 있는 애플의 역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악, 사진, 비디오 등의 재료를 가지고 몇 번의 클릭과 쉽고 재미있는 작업 과정을 거치면 그야말로 일상 생활을 고스란히 디지털화 시킬 수 있었고 이러한 ‘작품’은 거실의 티비와 주변 사람들에게 편하게 나눠 줄 수 있는 시디 형태로 ‘발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래 비디오 링크는 2004년 1월 아이라이프 발표 중 개러지 밴드 부분입니다.

이 클립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키노트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키노트를 컴컴한 피씨방에서 윈도용 퀵타임으로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개인적으로 개러지 밴드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지만 이 클립을 보면서 애플의 갖는 우리들 일상에 관한 상상력에 감탄하고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보편화된 일상으로 음악과 사진의 디지털화가 받아들여지는 시점에서 ‘창작’의 일반화를 우리가 꿈꿀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애플에게 하드웨어는 그 자체로 기업의 핵심 영역이자 영혼입니다. 허브로서의 맥, ‘아이 + 라이프’를 즐기는 도구로서의 맥이 애플이 추구하는 바였던 것입니다. iTMS, iTunes 등 아이팟을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여러 환경이 제공되기에 앞서 아이팟은 그 흰 색과 은빛 뒷모습의 102% 조화로움을 가진 예술 작품 그 자체였습니다.

아래 비디오 클립은 2001년 가을 잡스가 아이팟을 처음 대중에 선 보인 작은 이벤트 모습니다. 배터리에 관해 설명하는 잡스의 눈을 한번 보시죠. 음악을 담는 그릇이 어떠해야 하는지 애플은 철저히 연구하고 또 연구했던 것입니다.

당시 환율이 굉장히 올라서 399불짜리 아이팟이 국내 가격으로 79만원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엄청난 가격이었지만 중고 매물을 매일 뒤지며 그 우아한 모습을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싶었죠.

2008년 1월, 애플은 맥북 에어를 발표합니다. Air. 공기처럼 가볍다는 뜻도 좋지만 Wireless를 대신하는 말로 쓰임새가 돋보이는 작명입니다. -less는 뭔가 없음을 뜻하는 접미사입니다. 에어에는 뭐가 없을까요. 무게, 배터리 착탈불능, 광드라이브 등등 없는 것 투성입니다. 아래 클립은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은 바로 이렇게 ‘빈 노트북’임을 보여줍니다. 즉 진정 얇고 가벼워지려면 없애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애플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기본 개념에 충실하되 그 빈 곳을 절묘하게 채우는 다른 수단과 개념의 제시 전략을 잘 보여줍니다.

에어에 없는 게 또 있습니다. 바로 하드 디스크 용량입니다. 테라 바이트가 우습게 회자되고 오로지 성능과 용량으로 치닫는 컴퓨터 산업의 흐름에서 ‘역주행’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 맥북 에어는 기실 인터넷 열풍이 막 태동하던 시점에서 제창된 NC 개념의 변주라고 할 만합니다. NC의 핵심은 디스크가 없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연결성이었습니다. NC가 너무 시대를 앞서 갔다는 아쉬움을 맥북 에어는 애플과 잡스 특유의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새롭게 개념을 세웁니다. 하드 디스크는 온존하되 용량을 최소화하고 연결성은 극대화 시키되 무선으로 바꾼 것입니다.

따라서 2000년대 초 허브로서의 맥에서 간편한 ‘연결 지점’으로서의 맥으로, 새롭게 애플의 하드웨어 개념을 정립하고자 하는 첫 주자가 바로 맥북 에어이며, 이런 의미에서 NC의 변주라기 보다 새로운 NC 개념을 세웠다고 평가해야 옳을 것입니다.

연결성의 극대화는 아이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분화된 기종 별 오에스 텐 개발팀의 사례에서 보듯 애플은 ‘getting connected’ 환경에 최적화되는 여러 기기를 선 보이고 그에 맞는 오에스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갑니다. 아이팟의 성공을 전화기와 융합하여 새로운 분기점으로 삼아 연결성에 기반한 맥과 휴대기기라는 양 산맥 하드웨어 전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의 최종 마침표(당분간이나마)는 바로 오늘 발표된 ‘모블 미’ 서비스입니다. 우선 개인정보, 전자우편, 사진 등을 실시간으로 연결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로 시작하는 모블 미는 구글의 모습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82197

위 책은 ‘이쪽 편’ 대 ‘저쪽 편’의 관점으로 최근 구글로 대표되는 소위 ‘2.0 시대’에 대한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마이크로소프트로 대표되는 ‘이쪽 편’과 구글로 대표되는 ‘저쪽 편’이 존재하고 역사는 ‘저 쪽’으로 흘러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연결’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시장과 우리의 생활을 바꿔 가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애플은 어느 쪽일까요.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제조업의 강자라 할 ‘완고한 일본’과 더불어 70년대 출발하여 80년대 만개하고 어려움과 새로운 도약을 한 90년대를 거친 애플도 전통적인 ‘이쪽 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플은, 애플의 하드웨어는 ‘지는 해’로서 서서히 기울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애플은 이미 위에서 살펴 보았듯 어느 샌가 ‘저쪽 편’ 기업으로 방향을 틀었고 애플의 ‘이쪽 편’ 하드웨어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저쪽 편’ 서비스에 맞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 가시적인 출발이 바로 맥북 에어와 아이폰인 것입니다. ‘저쪽 편’의 대명사 구글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 엄청난 수의 서버를 돌리고 있습니다. 애플은 눈에 보이는 서버의 모습으로 (백업이라는 개인적인 용도를 내세워) 타임캡슐을 은근히 시작했고 어느 새 무선 연결을 대세로 만들었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하드웨어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 지점을 서서히 우리 생활 속에 구축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 애플은 디지털 허브와 아이라이프의 도구로서의 맥이 아닌 연결 도구로서의 맥을 만들고 있는 ‘저쪽 편’ 기업입니다. ‘Back to My Mac’으로 외부에서도 집에 있는 내 맥과 서버(타임캡슐)에 접속할 수 있고, 내 정보와 사진 등 디지털 미디어를 언제든 웹과 연결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 20기가에 달하는 홈 폴더를 제공합니다(모블 미).

이제 아이라이프를 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여자친구에게,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밤 새워 비디오 클립을 편집하기 보다 간편한 휴대 기기로 날 것 그대로의 클립을 유투브에 올려 공유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수십 기가에 달하는 음악을 하드 디스크에 채워 넣고 셔플 기능으로 원하는 음악을 찾기 보다 그냥 집에서 동기화 연결로 채워진 아이팟 셔플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음악, 사진, 영상 등 관리가 수반되고 노력이 더해져야 빛을 발하는 ‘My Life with iLife’는 이제 ‘My Life, always connected’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원하는 음악은 아이팟/폰으로 바로 구입해 듣고 사진은 그대로 내 홈피에 올려집니다. 편집의 노력은 이제 ‘대중(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거나 좀 더 ‘프로-암’다운 작업에 어울리는 다른 도구로 이뤄질 것입니다. 맥북 에어의 액세서리가 텐서브, 맥 프로, 아이맥이라는 말은 전혀 농담만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모블 미. 이제는 ‘저쪽 편’에서 건재한 애플의 새 서비스는 ‘활동적인 나’, ‘나를 움직이는 그 무엇’으로 개념을 잡아갈 것입니다. 그 움직임은 여전히 맥을 통해서, 아이폰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다만 그 역할을 하게 되는 맥은 허브가 아닌, 삶의 동반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less적’ 맥(/아이폰)이 될 것입니다. ‘왼손은 그저 거들 뿐…’처럼 맥은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와 미디어를 전달해 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도구의 우아함은 결코 저쪽 편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 손 안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http://albireo.net과 http://doccho.net에 발행됩니다.

Being Back

Tuesday, July 1st, 2008

두 달 반만의 포스팅. 최근 두 달처럼 내 본질에 대해 진지한 접근을 한 적이 있던가… 고마운 경험이다. 아래는 테스트

test ISBN

[genie 8990982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