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본질 탐구’ Category

IT 강국?

Monday, September 5th, 2011

올해 봄에 7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변호사가 되신, 60대 후반의 선배님 ((정확히 우리 아버지 연세이신데, 대략 5-6년 전부터 밖에서 알게 된 분들을 이렇게 부르는 게 좋아졌다.))을 알게 됐다. 같은 교회에서 우리 구역 구역장님의 친구분이셨는데, 이 두 분은, 내 시각으로 보기에, 매우 독특하셨다. 앉자마자 요즘 사회, 과학 등에 대한 질문과 대답, 토론을 이어가셨다. 통상 어르신들이 나누시는 일상의 토픽과는 거리가 있었다. 내게도 말할 기회가 주어졌고, 앞으로 갈 길에 대해 여러가지로 여쭙고 하던 와중에,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미국으로 온 게 잘 한 걸까요? 제가 영어로 사유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미국이, 영어가 어떤 의미일까요?”

“미스터 조, 하루에 미국에서 출간되는 책이 몇 권인 줄 아나? 한국 출판 책은? 모르긴해도 꽤 차이가 날걸세. 영어와 한국어로 된 정보의 양 차이는 예나 지금이나 좁아지지좁혀지지 않을 걸세. 앞으로 더 차이가 나지 않을까?”

그 두 분의 관심사는 그냥저냥한 일상이 아니었다. 우리 구역장님은 매주 받아보는 <타임>지를 반으로 접어 옆구리에 끼고 다니시는 분이고, 그 변호사께서는 그 날 자리에 앉기도 전에, 보자마자 내게 그 날 자 엘에이 타임스 기사 복사본을 건네셨다. 그 날 많은 걸 보고 느꼈다.

IT 강국이라는 말.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다. 참 잘 찾았다. 마침 오늘 에스티마의 인터넷 이야기 <아이패드로 TV보고, 신문, 책 읽기>허지웅의 블로그 글 <심형래라는 이름의 욕망>을 읽었다. 그리고 궁금해서 “콘텐츠”로 구글링해서 얻어 찾아 간 한국콘텐츠 진흥원 홈페이지.

이제부터 초절정 각성하여 마구 쏟아낸다해도 영어로 된 정보의 양을 압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IT 강국을 하고 싶으면 콘텐츠 양에 신경 써야 한다. 양이 확보돼야 질적 향상도 도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4월 1일 금요일 밤 10시 27분

Friday, April 1st, 2011

딱 24시간 전. 3월 31일 목요일 밤 10시 27분.

어설프게 늦은 저녁을 어디로 먹는지 모르게 해치우고 다시 앉은 자리. 4월 1일 금요일 밤 10시 27분이 올 수 있을까 싶었다.

정말, 시간은 눈깜짝할 새다.

토요일 아침 정기 일과

Saturday, March 26th, 2011

대략 지지난 주부터 내 토요일 정기일과가 하나 생겼다.

바로 아침 장 보기. 스프라웃이라는 동네 식료품점이 있다. ‘파머스 마켓’이라고 이름 붙은 농장-시장이어서 여러가지 채소, 과일, 육-유제품들을 판다. 올개닉, 유기농 상품도 꽤 많은 편이고.

이 스프라웃에 매 토요일 아침에 혼자서 차를 몰고 간다. 집에서 대략 5분 거리. 집에서 내린 일은 대략 우유, 계란, 빵을 사오는 것. 특히 빵의 경우 요즘 마늘빵에 맛이 들었다. 단돈 2불. 우리 다섯 식구가 두세 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많다. 이 마늘빵은 정육-빵 코너에 가서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빵에 마늘 소스를 발라 만들어 준다. 이걸 갖고 와서 집에 있는 오븐에 구워 먹는 것이다.

우리가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어떤 반찬이든 왕의 밥상으로 여기듯 이렇게 갓 구운 빵은, 이제까지 맛보지 못 한, 그래서 이제까지 스스로 ‘빵맛’이라고 여기던 그 맛이 진정한 빵 맛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 주었다. 한 살배기 꼬맹이까지 이 빵을 즐겨 먹으니 가히 우리 집 보배로운 아침식사다.

가족들이 즐거워할 것을 기대하면서 아침 장을 보는 아빠 심정, 참 좋다. 주책스럽게도 빵 코너 중국인 아줌마한테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 토요일 아침 스프라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오늘 토요일, 오늘은 또한 신선한 커피 콩을 받아 즉석에서 갈아서 커피를 사 왔다. 역시 단돈 2불어치. 이 정도면 아내와 나 둘이서 이삼 주는 먹을 것 같다.

소소한 행복.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 우리 모습. 토요일 아침에 내가 소중히 그려보는 그림이다.

이백 불

Saturday, January 29th, 2011

내 인생에서 이백 불은 얼마일까.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

Saturday, January 29th, 2011

희로애락(喜怒哀樂);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삶의 네 가지를 함축한 말이다. 때로 스스로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보통은 관계로부터 이들이 비롯된다.

관계.

우린 통속적인 관계 맺음을 유사이래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하고 있다. SNS. 타인에 대한 관심의 깊이가 남다른 우리 정서는 특히 서로 보여주고 알고 싶은 마음의 교류가 더 잘 이뤄진다.

위 네 가지를 뚝 잘라 네 등분하여 인생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 본다면 내 기쁨이나 즐거움은 겨우 사분의 일일 뿐이다.

나를 알고 싶고, 날 보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 고맙다.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사진. 기록. 기쁨이나 즐거움은 나누면서 수십 수 백배가 되지만 노여움과 슬픔은 드러내서 나누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진은 기쁨과 즐거움에 관한 기록이다. 적어도 대부분의 보통 사람에겐.

SNS. 마찬가지지만 가끔은 노여움과 슬픔을 보이기도 한다. 왜. 글이니까.

자, 하지만 결국 내 일상의 파편들일 뿐이다. 그 깊은 인간의 마음을 어찌 한 장의 사진으로, 글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남들이 날 바라본다. 날 감시한다. 날 평가한다. 사진으로. 글로.

그러나 평가는 네가 하나, 결코 그건 내가 아니다. 네 기억과 평가 속 나일 뿐.

“Untitled”

Friday, December 3rd, 2010

인생이란 참 어렵다. 나 혼자였으면 하다가도 또 옆을 바라보게 되고, 그렇게 얻은 힘으로 또 얼마를 살아가고.

속 얘기를 끄적이는 게 요즘 같은 세상에 참 어렵지 않은 일인데, 블로그에 또 이렇게 끄적거린다.

(논리적인 글로 보시면 갸우뚱 하시겠죠. 제가 요즘 시험 때랍니다. )

“맥빠”에 비판적인 당신에게

Wednesday, September 9th, 2009

오늘, 아니 정확히 어제 오전, 최근들어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행동을 했다. 아주 짧은 답글로 ‘싸가지’없는 댓글을 하나 달았다. “말조심 하시죠.”라고. 평소 여러 주관적 근거를 갖고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는데 어떤 표현에서 그만 저렇게 쓸 수 밖에 없는 감정을 갖게 됐다. 포럼 게시판을 어지럽힐까 싶어 더 댓글을 달지 않지만, 두어 분께서 비판 혹은 과민반응이라고 의사 표시를 했다. 여러 생각이 있지만 더 부연 안 하기로 했다. 대신 그 글타래 전후를 샅샅이 뒤져 읽어 봤다. 어쩔 수 없다. 세상, 아니 ‘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앞뒤를 잘 재야 하는데 감정을 고르는 방법은 더 철저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글타래를 훑다보니 갑자기 눈에 띄는 아이디 하나. 어, 전에 그 사람. 내친 김에 검색을 해 봤다. 역시 편지함에 잘 보관 돼 있다. 제목에 쓴 것처럼 무슨 무슨 ‘빠’ 소리가 듣기 싫다.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시간과 돈을 쏟아 붇는 게 아니다. 기왕에 그렇게 생각하고 표현하고 비판하고 싶거들랑 더 철저하게 해 봐라,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농담, 비판, 풍자 등은 모두 어떤 객체를 염두에 두느냐에 따라 평가 기준/요소가 달라진다. 우선 나 스스로를 비하/낮추면서 웃길 때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내가 내려 간다는데 어쩔 것인가. 나를 포함한 집단을 낮출 때도 대개 어느 정도의 표현은 묵인된다. 특히 내가 관여된 정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쏙 뺀 채 다른 개인/집단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가장 조심스러운 방법과 치열한 논법이 필요하다. 그냥 웃자고 한 소리라면 실없는 놈, 싸가지 없는 놈 취급을 받게 된다. 아니면 아예 거대한 우군을 끼고 돌아야 한다. 거친 언사라 할 지라도 정치인에 대한 댓구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우쭐해 할 수 있다.

자, 3만명 3천명이 넘는 애플 제품 사용자가 모인 포럼은 어떨까. 자신도 애플 제품을 쓴다고 하면서 ‘빠’, ‘팬카페’ 소리를 해 댄다. 그럼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일까? 나를 포함한 집단을 놀림 대상으로 삼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평소 애플과 맥에 대한 ‘광신성’을 부르짖어 비판해 왔으니 그는 비록 애플 제품을 쓰고 그 포럼에서 활동하는 사용자라 할 지라도 자기의 그 비판 대상에는 들지 않는다. 애플을 쓰되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세 번째 경우다.

수 많은 사례를 보아 왔는데, 그 중 몇 차례는 뛰어들어 짜증을 부렸다. 아래는 2007년의 그러한 어느 사례의 메일 내용이다. 난 간단하다. 욕을 해도 좋고 별별 소리를 해도 좋다. 다만 긍정할 만한 이유, 논지, 근거를 좀 대 달라, 이 말이다. 하다못해 엄한 소리하려면 좀 세련되게라도 해 달라는 것이다. 그저 비판적인 자세 하나만 잡는데 그칠 소리라면 애초에 꺼내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든 애플이 폐쇄적이어서 나쁘다고 할 것이거들랑, 제발 왜 나쁜지 더 자세히 써 달라. 폐쇄=나쁨인가?

안녕하세요. 독초입니다. 메일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글타래 주제 외 다른 얘기로 주렁주렁 답글을 다는 건 지양할 바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님의 의도를 대략 이해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관련해서 저도 십 수년 소위 ‘통신’ 생활을 해 오면서 글로 표현되는 개인의 생각과 의도의 깊이와 한계에 대해서 많이 공분도 하고 남들을 본의 아니게 공격도 하고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 한 듯’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는데 이렇게 명확하게 표현 안 하는 버릇도 그런 특성에서 비롯된 방어 기제지요.

많이들 이해하고 실행하시는 것 같은데, 그래서 ‘액면 그대로’라는 게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개인의 역량을 동원해서 객관적으로 글을 보는 것이죠. 사실 이 방법은 글 쓴이를 잘 모를 때 더 유용합니다.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적으니까요. 반대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방법입니다. 이유는 글 쓴 사람 탓도 있고 읽는 사람 탓도 있지요.

저는 보통 포럼에 글을 쓸 때 길게 쓰는 버릇이 있는데, 남들한테 핀잔을 듣습니다. 너무 길어서 읽기 싫다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오해를 줄이고 제 생각을 전달하는데 긴 글이 더 유용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길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닌데, 최소한 제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아직은요. 짧은 글로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공부가 부족합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

답장에 “구지 따지자면 몇가지 소소한 곳에 정보를 잘못 해석하거나 자신이 필요한 쪽으로 오도하고 있는 면도 보입니다.” 라고 쓰셨는데 주체를 누구로 말씀하시는 건가요? 원작자인가요, 번역자인가요? 제가 포럼에 쓰기로는 원작자의 오류는 넘어가더라도 번역이 주관적으로 해석된 부분이 있다면 명확히 하는게, ‘…한 듯’ 으로 얼버무려 오류를 두루뭉술하게 짚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공격의 의도는 없으시겠지만, 그 분이 직장에서 눈치 봐 가며 수고하는 내용을 단 몇 줄로 팍 쳐 내듯 표현하는 것은 대단히 실례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또, ‘폐쇄적’이라는 걸 굳이 따지라고 한다면 맞습니다. 애플이 폐쇄적이죠. 헌데 이걸 굳이 밝힐 이유가 뭘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숨기자는 게 아니고요. 어느 회사가 자기 소스 다 공개하고 하드웨어 다 공개하고 꼭 라이센스 해야 하고 그런가요. 왜 굳이 폐쇄적이라고 명시를 해야 하는지, 다른 뜻은 없더라도 폐쇄적이라고 못 박는 표현에서 그것은 속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단순한 답글로 ‘애플은 폐쇄적이잖아요’라고 그 글타래에 답글을 달았다고 해 보지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답글을 단 것까지는 좋으나 폐쇄적이어서 어떻다까지 나와야 적절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팔이 안으로 굽는다, 그러지 말자’라는 취지를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좀 더 자세히 명확히 말씀하셔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게 못나도 잘났다고 여긴다는 것인지, 딱 중간일 뿐인데 더 좋게 평가 해 준다든지 하는 뜻인지 등등요.

유저 모임과 팬 사이트를 구분하셨는데, 이것도 그렇습니다. 차이가 뭡니까. 이렇게 묻는 이유는, 제 생각에 저는 그 말뜻의 차이를 알고 있는데 **님이 쓰신 용어의 구분은 혹 다른 뜻이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바로 위 문단에서 ‘안으로 굽는 팔’과 연관된 뜻으로 결국 ‘객관적인 유저 모임’과 ‘주관적인, 때로 비이성적으로 옹호하는 집단인 팬사이트’라는 뜻으로 읽힙니다만, 그 생각이시라면 좀 더 근거를 갖고 임해 주셔야 합니다.

저도 일부 그런 사용자들이 있고, 저 또한 때로는 감성에 묻혀 그런 뜻을 글 쓰는 중에 나도 모르게, 혹은 일부러 농담조로 섞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 복잡하고 미묘한 경우를 뭉뚱그려 몇 단어로 딱 못 박아 버리면서 표현해 버리면 상황은 자못 심각해 집니다. **님도 느끼시겠지만 내 의도를 다르게 비틀어 반박하면 사람인 이상 다시 반박하고 싶어지겠지요. 그러다보면 소위 ‘플레이밍’으로 곁다리로 불붙어 버리고요. 또한 제가 아는 애플 포럼은 언뜻 생각할 때 그런 이미지가 아닙니다. 이건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결국 ‘일부 팬사이트처럼 여기는 분들’이라고 하셨으면 누구도 딴지를 못 걸텐데 그냥 팬사이트라고 하신다면 바로 저 같은 반박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뭇매는 지난 번에 아이폰 관련 글타래 때문에 더 그러실 것 같은데, 최대한 플레임에 간여 말자라는 원칙 상 자제 했을 뿐, 지금 제가 쓰는 이런 부분들을 그 때도 많이 느꼈습니다. 다른 분들의 답글도 그런 부분을 지적한 게 많았던 것 같은데요.

(중략)

제가 말씀드린 바와 다른 생각을 갖고 게시다면 좀 더 자세히 의견을 밝혀 주세요. 남 말에 긍정하는 글은 짧아도 쉽게 이해되고 넘어 가지지만, 그 반대라면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그래서 쉽게 비판하고 평가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요.

여기 모인 누구도 서로의 의도에 대해 깊이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올라 오는 표현 그대로를 나름대로 읽고 해석하고 또 의견을 개진할 뿐이지요. 의도 한 바 아니라고 생각하신다해도(저 또한 그것을 알고 믿고 있지만), 계속 그 의도와는 반대로 해석되는 글, 또는 자의적인 해석이 쉽게 될 정도로 자기 의도를 못 드러내는 글은 다시 반박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생각보다 길게 글을 써 버렸네요. 저 역시 제 의도가 다르게 읽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십 년 맥 써오면서 단순한 기기에만 그치지 않고 이용자들의 폭 넓은 지식과 안목 등에도 반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보편적인 수준에서 볼 때 맥 쓰는 사람들은, 평균적인 보통 사람과 비교할 때 특출한, 또는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걸 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많이들 그렇다는 것입니다.

혹은 맥을 쓰면서 얘기하다보니 다른 관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개인들의 성향이 오롯이 잘 보여서 그렇다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 어느 것이나 애플을 쓰면서 드러난 것들입니다. 다른 분들도 그런 점에서 자칫 ‘빠’라고 보일 정도로 포럼 죽돌이들을 하고 계신 게 아닌가 합니다.

제 긴 글, 잘 헤아려 주셔서 더 재미 있는 매킨토시 생활에 도움이 되신다면 좋겠네요.

그럼,

On Jan 31, 2007, at 1:13 PM, ** @ AppleForum wrote:

AppleForum ( http://www.appleforum.com/ ) 의 ** 님께서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AppleForum 은 본문의 내용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 님께 답장을 하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http://www.appleforum.com/sendmessage.php?do=mailmember&userid=****

메일 링크는:
mailto:***@***

메일 내용입니다:

제글을 인용하시어 쓴 글을 보고 메일 드립니다.

글타래와 상관없는 글이 주렁주렁 달리는게 보기 안좋을듯 하여 이곳에 남깁니다.

거기에서 말한 ‘번역’은 원글에 있는 ‘플랫폼의 역사’를 바라보는 해석(시각)이 잘못된 곳이 보인다 였습니다. 번역을 말하고 있는것이 아니지요. 저는 장문의 영문글을 번역하거나 판단할만한 사람이 아직 못됩니다.

그리고 글타래와 별 상관없는 의견개진을 열심히 하는게 별로 보기 안좋을것 같아 짧게 말하고 말았습니다만, 표시했다시피 OS/2에 관련해서 IBM과 MS의 관계는 명확히 잘못 되었다 하고 집었습니다. 구지 따지자면 몇가지 소소한 곳에 정보를 잘못 해석하거나 자신이 필요한 쪽으로 오도하고 있는 면도 보입니다.

그리고 구태여 애플이 패쇄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는것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고 계실것으로 생각합니다.

애플을 사용하면서 너무 팔을 안으로 굽히지 말자는 취지로 근래에 몇개을 글을 남겼었습니다. 애플포럼은 유저모임이라기 보다는 팬사이트 형식이 강한지 뭇매를 많이 맞고 있군요. 사용자로서 목소리 내고 싶은만큼 내보았습니다. 애플포럼에 계신 누구를 욕되게 하거나 애플을 깍아내리자고 쓴것은 아니었습니다.

애플이 마이너이고, 안되는게 많은것을 알면서도.. 내 필요한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적당해서 선택했을뿐입니다. 그만큼 만족하지만, 그만큼이 딱 얼마큼인지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애정의 조건

Friday, April 24th, 2009

관심 감사합니다.
저는 사업적 목적, 장삿속으로 하는 일입니다. 아마추어 아닙니다.

저 두 가지 말. 사람들의 관심이 어떤 개인에게 금전적 이익이 되는 구조는 실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습이다. 아닌 일은 뭔가, 하긴.

그런데 주의할 일이 있다. 관심과 이익은 때로 짧게 연결 될 수도 있고 복잡한 실타래로 얽힐 수도 있는데 짧은 연결일 경우에는 이익 추구는 되도록 감추어지게 설계되어야 한다. 대중의 관심이 그 수익자 개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아닌 경우 수익자는 자신의 수익이 그 관심에서 직접 비롯된 것임을 굳이 밝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고 또한 수 많은 진정한 관심을 배반하지 않는 일이다.

관심은 곧 애정이다. 애정도 목적과 대상에 따라 다양하지만 지금 우리가 따져보는 이 애정은 그야말로 순수한 애정이다. 옳고 발전된 기술의 혜택을 맛 보고 우리 생활의 토양도 다양한 관점과 바탕 위에서 더 비옥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의 관심이자 애정이다.

그런데 그 애정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상 애정은 그리 갖고 있지 않고 수익을 위한 노력이라고 하고 있다, 이 사람 지금.

서태지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배용준도 일본인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도 키노트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의 애정을 잘 이끌어 올바른 목적에 인도한다 혹은 올바르게 보이는 목적으로 인도한다.

애정에는 조건이 따른다. 애정의 대상을 잘 살펴야 하고 혹 그 대상이 사람일 경우 애정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그 애정을 고스란히 자신의 이익으로 돌리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의 애정이 배반당하지 않으려면.

‘매킨토시’가 어울리는 풍경

Friday, March 13th, 2009

이렇게 제목을 붙여서 글타래를 만들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만… 당장 제 형편도 책과 맥의 멋진 하모니라고 보여드릴만한 ‘그림’은 안 나오네요…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올려 봅니다. 아래 링크는 비교적 맥 비호환적인(개인적인 짧은 경험에서 비롯되어 판단하는) 네이버 쪽 링크인데요. 가수 이 적 씨의 집 내부인데 알북으로 추정되는 맥이 있네요. 15″인지 17″인지는 잘 모르겠고요.

http://book.naver.com/bookshelf/story.nhn?startmonth=200810

저도 저희집 ‘친구들’과 어울려 넓직한 탁자에서 각자 자기 책이나 일을 하는 여유로움을 갖는 게 꿈 중 하나인데요. 그 때 한 켠에 ‘매킨토시’ ((애플이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언제 버렸는지 확실치 않은데 Mactracker로 찾은 정보에 의하면 파워 매킨토시 G3라는 이름까지는 사용이 됐군요. G4로 넘어 오면서 ‘파워맥’이라고 정식 명칭을 정했는데 그 직전 ‘아이맥’을 발표했으니 대략 1999년 전후로 ‘매킨토시’라는 이름은 사라진 듯 합니다. 컴퓨터 이름이면서도 참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름인데 이리 오래 사용 안 해 왔으니… 참 아쉽네요… ))가 놓여있도록 하는 게 또한 목표입니다. 어떤 ‘매킨토시’가 좋을 지 어떤 맥이 좋을 지,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는데 현재는 큐브를 갖고 있으니 1순위이긴 합니다. 실제 사용을 위해서는 당시 최신형 아이맥이지 않을까도 싶고요.

성공

Monday, February 23rd, 2009

“성공은 불확실의 연속이다.”

오늘 아내가 전화를 걸어 와 해 준 말이다. 어디선가 보고 전해 준 말.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확실한 성공이 과연 존재할까. 확실하다면 성공 못 할 사람이 있을까.

성공이란 말을 먼저 정의해야 할 일이긴 하다. 하지만 위 문장에서는 성공보다는 불확실, 연속이라는 낱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불확실로 나아갈 용기, 결단, 노력, 그것들이 없이 자신이 그린 성공을 맛볼 수 있을까. 또한 그 끝이 언제일 지 모를 불안의 연속을 끊임없이 헤쳐나가지 않고 과연 성공의 길에 다다를 수 있을까.

본질을 탐구하고 진정한 진리에 이르는 길. 어떤 길인지, 어떤 결과일 지 아직 알지 못 하나 이미 그 불확실의 연속선상 들어섰다. 남은 것은 오직 노력 뿐이다. 또한 그 일련의 불확실함을 이길 확실함은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