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Thursday, February 28th, 2008

http://www.apple.com/pro/profiles/
http://www.apple.com/business/profiles/
http://www.apple.com/science/profiles/
http://www.apple.com/itpro/profiles/ 

프로. 전문가라고 하면 좋을까. 가끔 위 사이트들을 가 본다. 여러 모양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이야기에 매킨토시를 버무려 놓고 있다. 다분히 애플 제품 홍보 사이트라는 면이 두드러지지만, 그런 유치한 생각은 접고 일단 그 내용에 빠져 본다면 여러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고 각자 자기의 분야에 맞는, 최소한 비슷한 경우를 찾을 수 있다.

전문가. 용어의 혼란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글을 쓰거나 접할 때 한자말을 되새기게 된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 오로지 하나의 문이라고 하면 될까. 국어사전의 말 풀이에 의하면 <집중 연구 + 지식/경험 풍부>로 요약할 수 있다. 집중 연구한 이력이 있어야 하며 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함을 증명까지 해야 전문가 소리를 들을성 싶다.

자칭 전문가입네, 전문가연 하는 사람들이 극도로 늘어난 현대사회지만 여전히 전문가에 대한 대접은 융숭하고 그 전단계로서 평가는 물렁한 편이다. 게다가 불행히도 아직 전문가군에 포함되는 직업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19세기에서 20세기 어디 쯤에 머물러 있어서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기란 생각보다 쉽다. 얼마 전 신 모 씨의 경우도 바로 이런 전문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그가 집중 연구하여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었는지, 그런 요소들이 발휘되었는지, 또한 그런 지식과 경험이 어떻게 채용과 사회적 지위 획득에 기여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지위를 가짐과 동시에 그런 것들이 자동 부여 됐는지 등, 여러 사회 병폐와 맞물려 새로운 전문가 상을 조명할 기회를 잠깐이나마 언론에서 제공해 준 바도 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들어 온 박사, 즉 박사 학위에 대한 부모님, 특히 아버지 및 친가 계열 분들의 열망은 가히 높고 높아서, 지금 내가 자랑스러워 마지 않는 내 아이디 독초, doccho도 여기서 비롯된 내 고뇌의 결과물이다. 애플 열렬 사용자로서 ‘부끄럽게도’ 이 아이디를 처음 사용한 것은 인터넷이 막 대중적으로 태동한 시기, 1990년대 초반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름 심혈을 기울인 MSN, Microsoft Network, 서비스였다. 당시 하이텔 아이디를 바꿔주는 단발 행사가 있어서 그 뒤 내 아이디는 doccho로 오로지 되었다.

독초. 어디 가서 내 아이디를 말하면 통상 듣던 것은 ‘의사십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럼 내 대답은, 왜 살짝 까칠하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닥터가 의사만 뜻하는 것은 아니지요’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만든 그 아이디는 Ph. D. doctor의 세 글자를 따고 내 성 cho를 뒤에 붙인 것인데 그 전에 봤던 ‘백투더퓨처’라는 영화에서 극중 마티가 ‘닥’하며 브라운 박사를 부르는 데서 그 쓰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나도 닥터=의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른들 세계에 대한 반발은 당시 내게도 당연한 것이지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송가 ‘박사’는 어린 내 머리에도 오랫동안 인이 박혀서 그런 것인지 좋은 뜻으로만 해석되어 있었다. 박사=전문가=교수 등등이 아니던가. 뭐든 자신의 필요와 흥미대로 뜻을 펼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모두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지금도 내가 최고로 꼽는 학자적 명예를 가장 일선에 놓을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 바로 박사, 교수 등의 전문가였던 것이다. 한창 청춘을 고민할 때 (지금도 이렇게 회자되는 지 모르겠지만)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하는 기초적 전제에서 봐도 ‘박사’는 최고의 직업군이라 여겨졌다.
요즘 누구 말로는 부부 교수 25년에 3-40억은 축에도 못 든다는 말이 있지만 난 그 때도, 지금도 돈이 우선일 수 없다고 여긴다. 자식 키우는 아버지 입장에서 달리 말할 거리는 있지만 그건 본질과 다른 논외로 하고.

그제 사무실 후배에게 말한 바 있는데, 학연, 지연 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기제이고, 여전히 그 표지는 사람을 평가하는데 최우선으로 고려되고는 있지만, 과거와 달리 그 표지와 다른 표지를 먼저 선 보이며 평가를 요청할 때 ‘치워’라는 인식은 사라져 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대표적으로 이런 블로그를 보자. 어디서 나고 자랐고 어디 나왔는지 (여전히 중요할 수 있겠지만) 먼저 그 요소를 놓고 글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최고의 만화를 그려도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여전하다해도 대중은 그 만화가를 여전히 뜨겁게 사랑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소위 ‘넷심’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의 발단은 맥북 에어다. 상주하다시피 하는 알비님의 포럼에서 맥북 에어에 대한 글이 활발히 올라오고 자연스레 나도 ‘프로’가 아님을 선언하고 ‘에어처럼 자유롭게’ 살아 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일단 기존의 ‘프로다움’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 것이다.

(맥북 프로를 쓰면 프로고, 맥북을 쓰면 프로가 아닌 ‘범인’이다라는 유치함은 여기에 발 붙일 곳이 없다. 이렇게 한 자락 깔아 놓아야 하는 세태와 글로 전달하기의 어려움에 아쉬움은 남지만 읽는 자나 쓰는 자(나 자신)나 모자라긴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불가결한 일로 생각된다)

프로다움. 전문가다움. 다시 뜻풀이에 기댄다면 연구(공부)와 그로 인한 지식/경험의 우러남에서 그 ‘움’스런 기운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전에는 그런 연구, 지식, 경험이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 그리고 알량한 졸업장으로만 확인되고, 확인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학연, 지연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되는 그 기제와 별도로 다른 기제가 함께 돌아가고 인정 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반대로 졸업장만으로, 박사학위만으로 25년을 교수라고 떠들고 다닐 수도 없다. 이미 우리는 전과는 다른 검증과 평가의 패러다임 변화를 맞이했다.

맥북 프로를 쓴다고 전문가이겠는가. 사진기를 무시로 갈아치운다고, 자칭 사진 전문가입네 교수입네, 한들 그게 전문가이겠는가. 도구는 익혀 쓰는 손에 따라 다른 가치를 내 뿜는 것이고 내가 캐논 D1을 써도 그건 그냥 일개 사진일 뿐, 작품이 아니다. 과연 내가 지향하는 전문가로서 가치가 ‘움’스럽게 나타나려면 얼마나 공부하고 경험으로 보여져야 할까. 나는 10여 년을 애플 제품을 써 왔으므로 애플 전문가일까.

시대가 인정하는 ‘프로다움’은 어느 정도일 지 궁금하다. 진정 맥북 프로가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으려면 얼마나 더 가야할까. (실제로 이사가 된 사례를 빗대) 주변에 잠시 ‘자기 기안’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런 자기 기안 내지 기만 없는 진정한 전문가의 도구는 뭐가 되어야 할까. 오늘의 의문이다.

[composed and posted with ec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