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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설
1. 맥북 에어, 오랜만에 청소를 하다
2. 애플 스토어에서 서비스도 하나?
3. 미국 애플 스토어는 뭐, 다른가?
4. 애플 스토어에 수리 예약을 하다
(이상 1부 목차)
5. 애플 스토어, 직접 찾아가다
오늘은 2월 19일 목요일. 어제 온라인으로 예약은 했지만 토요일 약속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틀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무엇보다 수리 여부라도 알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아침 수업을 들으면서 고민 끝에 애플 스토어를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본시 당일 방문자를 염두에 두는 것이 대개의 예약 시스템이라는 생각에 직접 찾아가서 상담을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생각은 맞았습니다.
이른 봄 바람의 따스함도 에어 액정에 대한 걱정과 상념으로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평일 느즈막한 오후인데도 애플 스토어는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하지만 매장 깊숙히 자리잡은 지니어스 바를 바라보니 그리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지니들도 한가롭게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지나가는 콘시어지 스태프에게 저간의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기대와 달리 예약없이 지니어스 바 상담은 안 된다고 합니다. 지니어스 바 앞에 있는 리셉션용 아이맥으로 예약을 하라고 안내해 줍니다. 이 사람들의 ‘노’는 어지간해서 ‘예스’로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다시 예약을, 어제 예약을 했음에도, 시도해 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날짜가 하루 앞당겨진 금요일 오후 네 시에 예약 시간이 비어 있습니다. 분명 어제는 토요일 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하루 당겨진 게 어디냐 싶어서 예약을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지니어스 바 앞에서 이들의 서비스를 유심히 지켜 봤습니다. 꼭 예약으로만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느슨한 일과로 보이는 가운데, 지니들도 바쁘게 예약 손님을 맞지 않고, 그렇게 맞을 손님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 차례는 없지만 잠시 짬을 내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좀 더 옆으로 자리를 옮겨 지켜 봤습니다.
갑자기 모자(비니)를 쓴 지니 한 사람이 저와 눈이 마주치고 “뭐, 필요하신가요”라고 질문을 합니다. 순간 내 문제를 상담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내일 예약을 잡았다고 답했습니다. 이 사람들 눈 마주치면 의례 던지는 인사치레 정도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지켜 봤지만 여전히 그리 빡빡하지 않은 일 진행으로만 보였습니다.
이윽고 용기를 내어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방금 제게 질문을 던진 지니에게 다가가 내일 예약을 잡았으나 잠깐 질문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합니다.
“집에서 액정을 닦다가 코팅이 벗겨졌다. 난 힘을 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키보드와 트랙패드 때문에 액정에 흠이 생겨 난 자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가. 그런데 사용자의 과실이면 보증 서비스가 안 된다.”
“과실일 수가 없다. ‘흠’이 생긴 곳을 문질렀는데 코팅이 벗겨졌다.”
“‘흠’이라고? ‘크랙’? 그렇다면 안 될 것 같다.”
“‘크랙’은 아니다.”
(옆 다른 지니)”물로 닦았는가?”
(괜히 꼬투리 잡힐까)”아니다. 입김만 불어 닦았을 뿐이다.”
“봐야 알겠지만 힘들 것 같다.”
대략 위와 같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흠’을 정확히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이해도 못 한 것 같았습니다. 내일 다시 와서 보여주겠지만, 보지도 않고 설명을 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맥이 탁 풀렸습니다.
6. “다 이루었다.”
흰 수염이 멋진, 인자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의 헬드 교수님이 진행하시는 불법행위법 수업. 긴장 속에서도 온통 신경은 오후에 잡은 예약 시간에 쏠립니다. 뭐라고 설명할까, 어떤 답을 해 줄까, 만일 서비스가 된다면 언제 맡긴다고 할까, 서비스 안 된다고 하면 어쩔까 등등… 점심 무렵이면 수업이 끝나 오후부터는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해야할 금요일이지만, 오전부터 어깨를 짓누르는 고민과 수업 틈틈히 전해오는 긴장 속에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날 듯이 집으로 가서 점심을 대충 해결하고 예약 시간을 기다립니다. 예약 시각은 네 시 사십분. 점심을 먹고서도 한 시간여를 기다려야 하는데 맥없이 기다리느니 일단 가 보기로 했습니다. 예약 시간이 정확히 지켜질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고 어제 가 본 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면 일찍 차례가 올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애플 스토어 @빅토리아 가든스.
금요일이어서 그런지 지니어스 바는 어제와 달리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화면에서 등을 보이는 남녀는 유니바디 15″ 맥북 프로를 들고 와서 서비스 의뢰를 하는데 시간을 꽤 소요했습니다. 그 뒤로 보이는 모자(비니)를 쓴 지니가 어제 제게 답을 해 준 그 지니입니다. 오른쪽 챙 모자를 쓴 지니도 어제 그 지니고요. 이 애플 스토어는 지니어스 바에 대략 다섯 대의 맥북/프로를 두고 서비스를 진행하는데 보통 네 군데로 나뉘어 서비스가 진행됩니다. 왼쪽 둘은 맥 서비스, 오른쪽 둘은 아이폰/아이팟 서비스를 진행합니다. 비니를 쓴 지니와 사진에 안 보이는 다른 지니가 맥을 담당하는 지니들입니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너무 일찍 간 관계로 매장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위 사진은 기다리며 찍은 매장 안 풍경입니다. 예약 아이맥 바로 앞에서 찍은 것인데 저 테이블은 1:1 예약을 한 손님을 위한 테이블입니다. 비교적 나이가 드신 저 하늘색 티셔츠의 스태프는 ‘specialist’라는 표시가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손님에게 상세한 맥 사용 방법을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맞은 편 손님들도 담당 스태프에게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복잡한 지니어스 바 앞과 달리 매장 안은 전체적으로 한산했습니다. 이 때 시각이 약 세 시 정도 되었습니다.
좀 옆으로 옮겨서 찍어 본 풍경입니다. 매장 안에는 가족들, 연인들, 남녀노소 등 ‘종류’도 다양한 손님들이 오고 갑니다. 왼쪽 아래에는 아이들용 아이맥이 두 대 놓여 있습니다. 처음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애플 체험 센터가 생겼을 때 아이들용 아이맥이 놓여 있었던 기억입니다만, 이후 바뀌면서 이러한 배치는 없어졌습니다. 위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반대편에는 벽 하나가 온통 소프트웨어 박스를 담은 선반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자연스레 매장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즉석에서 구입을 하며, 이런저런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애플 스토어. 꼭 애플이 아니어도, 컴퓨터가 아니어도 좋은 사례로 연구해야 할 사례임에 틀림없습니다.
도착한 시각은 세 시가 넘어서였지만 지니어스 바는 생각보다 혼잡했고 처음 사진에서 본 남녀 손님의 15″ 유니바디 맥북 프로는 무슨 문제인지 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윽고 시간은 지나 네 시 경.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제 차례는 다섯 번째입니다. 제가 처음 도착했을 때 일곱 번째였는데 시간이 지나도 영 줄어들지 않는 것입니다. 예약 시간보다 빨리 볼 수 있겠다 싶었던 기대는 슬슬 반대로 바뀌어 예약 시간 네 시 사십분을 넘길 것 같았습니다. 이 때 안 일이지만 당일 예약도 가능한데 그건 이미 상황 종료된 일었고요.
현재 맥 파트를 담당하는 지니는 머리가 길고 약간 배고 나온 지니와 비니를 쓴 지니 두 사람. 머리 긴 지니는 15″ 유니바디 맥북 프로를 붙잡고 수십 분을 서류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이 여간 날카롭지 않아서 아무래도 뭔가 잘못 된 것 같습니다. 제품 의뢰를 하러 온 남녀도 한숨을 간간이 섞고 앉아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비니를 쓴 지니가 담당한 손님은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백팩을 맨 15″ 알북 사용자. 그냥 상태 점검하고 바로 맡길 것 같았던 상황이었지만 웬걸, 시간이 꽤 걸립니다. 매번 확인하는 바이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기다림은 정말 익숙해 보입니다. 이 사람들이 잘 참는다기 보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윽고, 머리 긴 지니가 담당하던 남녀 손님이 자리를 뜹니다. 그 지니는 들릴 정도로 한숨을 푹 내 쉬고 묵묵히 흰 맥북 키보드에 열심히 손을 놀립니다. 아직 제 차례는 아니지만 저 지니에게 제 순서가 오면 별로 좋을 게 없어 보입니다. 제게 화를 내지는 않겠지만 어제 앞서 지니들에게 확인한 것도 있고, 제 상황을 설명할 능력도 부족하니 가급적 기분 좋은 지니에게 보이는 게 낫지 싶었습니다.
갑자기 지니어스 바 쪽이 한산해 지면서 호명되는 손님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올라있던 제 이름이 슬슬 앞 순서로 변경됩니다. 어떤 지니일까, 제발 비니 쓴 지니에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되뇌입니다. 이윽고 15″ 알북 사용자가 자리를 뜨고 새 손님이 호명됩니다. 아, 제 차례가 아닙니다. 제 바로 앞 번호입니다. 다시 수 분여 기다림. 오렌지 색의–콘시어지로 보이는– 스태프가 제게 다가와 몇 번이냐고 묻습니다. 지니도 아니면서 왜 묻지 싶었는데 대답을 하고 옆에서 보니 매장 책임자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앞 다른 손님을 호명하더니 이윽고 머리 긴 지니가 나타나 맥북을 들여다 보면서 제 이름을 부릅니다. 으, 저 기분 안 좋은 지니가 내 담당이라니…
심호흡을 하고 설명을 하려던 찰나, 아침부터 준비한 온갖 설명 멘트가 깡그리 머릿 속에서 지워졌습니다. 이런 이런… 천천히 맥북 에어를 백팩에서 꺼냅니다. 에어가 처음 선 보였을 때 돌풍을 일으켰던 마닐라 봉투 모양의 슬리브를 꺼내 탁자 위에 놓습니다. 바로 옆 비니를 쓴 지니는 저를 기억하고는 관심있다는 듯 제 에어를 흘긋 곁눈질 합니다. 안 될거라고 한 제품의 상태가 궁금했을테죠.
걱정과 달리 머리 긴(길고 배도 나온) 지니는 제 얘기를 천천히 들어줍니다. 원래 준비했던 설명은 좀 길었는데 머릿 속이 텅빈 상태라 바로 액정을 보여주며 어제 설명한 것과 똑같이 얘기를 했습니다.
슬리브를 아래에 깔고 에어를 내려 놓았는데, 아, 이 지니는 뭔가 아는 듯 합니다. 최대한 제 사용 습관을 배려합니다. 에어 액정을 보기 위해 에어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나 다시 내려 놓을 때 모습 등, 분명 이 사람은 오랫동안 맥을 써 왔고 저 같은 맥 사용자의 습성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충분히 배려된 느낌을 받으며 설명을 했는데 이윽고 이 지니가 대답합니다.
“수리 해 드리겠습니다.”
“네? 수리 된다고요? (반신반의하며, 그러나 분명 된다고 했으니 다른 대답 못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왜요?(라고 물었습니다. ㅎㅎ) 어제는 안 된다고 했는데(옆 비니를 쓴 지니를 흘긋 쳐다 봅니다. ㅎㅎ)…”
“이건 손님 과실이 아니니까요. 액정 문제네요.”
“아, 정말인가요. 고맙습니다X100”
기분히 확 날아오를 듯 좋아졌습니다. 예상 외로 순순히 수리 판정을 해 준 지니. 애플 스토어 및 스태프 시스템에 대한 장점이 돋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젊어 보이는 이들에게 주어진 권한이 꽤 커 보였고 예약과 기다림의 순간이 힘들어도 판정 및 수리 절차가 생각보다 간명하여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는 듯 생각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지니는 제가 설명을 하지도 않았는데 맥북으로 서류 작업을 하며 제가 편한 날짜에 언제든 제 맥을 갖고 와서 수리를 맡기라고 합니다. 액정 문제는 당장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고 통상 수리는 5-7일 정도 걸리니 그렇게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요구하기 전에 제 마음을 헤아려 답변을 척척해 주는 지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좋은 기분도 잠시. 이내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믿으실 지 모르겠으나) 내내 에어 액정 수리 여부에 대해 마음이 쓰였으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미국 애플 스토어에서 수리 판정 및 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고 이런 과정을 주위 사용자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마냥 좋아하면서 웃고 있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아까 15″ 유니바디 맥북 프로 때부터 유심히 지켜본 바, 위 사진의 왼쪽 머리 긴(배도 나온) 지니는 저 흰 맥북으로 꽤 오랜 작업을 합니다. 도대체 어떤 화면일까 그것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이제 제 수리 판정도 내려졌겠다 본격적으로 탐구에 들어갑니다.
말을 않고 옆에서 같이 화면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사진은 찍지 못 했습니다. 한국의 애플 사용자와 환경에 대해 관심있는 모습이었습니다만, 한국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 내가 속한 포럼에 이 광경을 ‘리포트’해야한다고 사전 양해를 했지만, 화면은 안 된다고 하면서 맥북을 돌려 테이블 뒤로 돌아가더군요. 그게 위 사진 모습니다. 원래는 바로 제 옆에서 맥북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돌아 들어가기 전, 바로 옆에서 본 지니의 맥북 화면을 기억해 보겠습니다. 일단 사파리입니다. 처음에는 아이튠스인 줄 알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주소창이 보이는 사파리인데 화면 내용 상단에 아이튠스처럼 큼지막한 상태 표시 창이 있습니다. 그 아래에 각종 폼으로 이루어진 화면이 떠 있고 (아마도) 손님과 제품 정보를 담는 칸으로 꽉 차 있습니다.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나 했던 의문도 풀렸습니다. 웹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어서 해당 제품을 조회하고 입력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걸리는 듯 했습니다.
머리 긴 지니는 자신의 명함–은색 애플 마크가 빛나는–에 수리 번호를 적어 제게 주었습니다. 다음에 올 때 이 번호를 알려 주면 바로 맡길 수 있다고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보증 기간 내 언제든 제 편할 때 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오는 길, 따뜻한 봄날씨에 절로 콧노래에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참, 오늘 모두 해결되었으니 내일 예약은 취소해야 합니다. 잊은 채로 나왔다 애플 스토어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지만 웃음은 가시지 않습니다. 앗싸!
7. 결론
구경만 하던 미국 애플 스토어. 며칠 동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리 판정 경험을 해 봤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언어 장벽 문제도 있겠지만 문제 발생과 수리 여부 결정까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닙니다. 비단 저 뿐 아니라 지니어스 바에서 목격한 여러 사용자들을 보고 있으니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애플 스토어의 스태프들, 특히 지니어스 바의 ‘지니’들은 겉으로 보이는 자유로운 모습과 달리 소비자에 대해 큰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태프끼리 의견 교환을 하지 않고도 독자적인 판단으로 수리 여부 판정을 해 주면서 기다림에 지친 손님에게 더 이상의 고통은 요구하지 않았고, 즉석에서 수리까지 해 주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위 사진에서 흰 아이맥은 즉석 수리에 들어간 모습입니다. 사용자가 보는 가운데 진행하더군요.
시스템이야 어떻든, 소비자가 원하는 환경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빠르고 명확한 서비스가 아닐까요. 제가 경험한 미국 애플 스토어는 비록 예약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며칠 기다려야 하는 일은 기본이지만, 일단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받는 서비스는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앞 사람을 기다리면서 힘들었지만 막상 제 차례가 되자 충분히 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요. 수리 판정도 바로 해 줄 권한을 갖는 스태프이다보니 설명을 되풀이할 필요도 없었고 매우 빠르게 일 처리가 되었습니다. 빠르지는 않아도 명확한 서비스를 함으로써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우리 경우를 떠 올려 봅니다. 예약이라 할 수 없는 당일 번호표 시스템입니다. 약간 기다리기는 해도 오늘 바로 의뢰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속도는 빠른 반면에, 수리 여부 판정은 오늘 받기 어렵습니다. 상황 설명을 하고 입고를 한 후 입고증을 받으면 수 일 내에 문자나 전화로 판정 여부를 설명 듣고 그 다음 과정이 진행되는 시스템입니다. 오늘 처리’한다는’ 장점은 있으나 오늘 판정은 ‘안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어느 방법이 좋을지는 정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니어스 바 형태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들의 수리 판단 권한이 생래적이 아닌 교육과 훈련에 의한 것은 명확한 이상, 우리나라 애플의 수리를 담당하는 곳도 교육과 훈련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 제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 제 경험으로는 수리 담당 기사께서 단독으로 판단하여 수리 여부를 결정해 주시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만…
제목과 달리 최종 수리까지 해 본 경험기는 아니어서 송구스럽습니다. 제 에어를 다루는 품새나 입고된 제품을 포장지에 담아 안으로 들고 들어가는 것으로 봐서는 미국 애플 수리 기사들도 꽤 조심스럽게 제품을 다루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언제고 제가 일주일 정도 에어 없이 살 수 있을 때 수리를 맡겨서 더 깊이 있는 경험을 해 봐야겠습니다.
이 글은 제 맥북 에어 액정에 문제가 생겨 미국 L.A. 인근에 위치한 Victoria Gardens(빅토리아 가든스)에 위치한 Apple Store(애플 스토어)에서 수리 여부 판정을 받기까지 과정을 서술한 글입니다. 제 맥북 에어 얘기와 애플 스토어에서 보고 경험한 것, 느낀 것 등을 싣습니다. 내용이 좀 길게 되었습니다. 1, 2부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맥북 에어를 사용한 지 이제 7개월 여가 돼 갑니다. 처음 맥북 에어를 구입하여 받아들고 열었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 합니다. 그러나 곧이어 갖게 된 실망도 역시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제 에어는 액정 불빛이 고르지 못 합니다. 가운데 하단이 더 밝아서 주위와 밝기 강도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편이지만 어두운 곳에서 흰색 바탕 화면일 때는 얼룩처럼 보여 눈에 거슬려 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액정의 조립 상태입니다. 전체적으로 조립 상태가 고르지 않아 화면 베젤이 굴곡져 있습니다.
키보드도 온전치 못 한 편입니다. 스페이스바는 약간 휘어져서 끄트머리가 액정에 닿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와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맥북 에어는 참 쓸만한 기종입니다. 이렇게 얇은 노트북을 쓴다는 일은, 평소에 그저 무심히 지나치다가도 어느 샌가 그 가벼움과 얇음에 화들짝 놀라게 되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특히 요즘 제 주위의 비 맥북 유저들의 노트북, 즉 피씨 계열 노트북을 보노라면 어떻게 저렇게들 튼튼함만 강조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 오늘 쓸 얘기는 그제 액정을 닦다가 생긴 코팅 벗겨짐 증상에 대해서 이 곳 미국의 한 애플 스토어에서 수리 여부를 판정받은 여정에 관한 것입니다.
1. 맥북 에어, 오랜만에 청소를 하다
그제 오랜만에 에어의 액정을 닦았습니다. 먼지와 지문으로 뽀얀 액정에서 조심스레 먼지를 털고 못 쓰게 된 런닝 셔츠에 살짝 물을 묻혀 살살 닦아 냅니다. 그리고는 다시 얇은 액정 닦이로 말끔하게 닦아 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없어지지 않는 자국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자세히 관찰해 본 결과, 이동 시 액정이 키보드와 맞닿는 면에 상처가 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자국은 애지중지 써 온 그동안의 과정과 반대되는 가슴 아픈 결과이지만, 또한 그 사용한 시간만큼 당연히 생길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액정과 키보드는 노트북을 닫아 놓았을 때 상당히 밀착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습니다. 유명 해외 포럼에 맥북 에어의 트랙패드 부분과 액정이 닿아 생기는 결과에 대한 보고도 있었는데, 제 에어는 그 외에도 트랙패드의 구석 부분과 액정이 닿아 키보드로 인한 상처 이상으로 큰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제 문제는 여기서 발전되는데 이걸 먼지로 오해하고 열심히 닦아내다 보니 없어지기는 커녕 더 커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액정 코팅이 3-4 밀리미터 정도 벗겨진 모습이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아끼는 제 성격에 비해 액정을 대하는 제 태도는 정반대 격이어서 거의 지문과 먼지, 빈번한 아이챗 대화로 인한 ‘파편’으로 얼룩진 액정이 평소 모습이긴 하지만, 이렇게 뭔가 외부 요인이 더해져서 생긴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액정을 닦기만 했는데 코팅이 지워지다니… 그동안 써 온 몇 대의 파워북과 맥북 등을 돌이켜 볼 때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2. 애플 스토어에서 서비스도 하나?
한국의 애플 서비스에 대해서 불만이 많습니다.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데, 기본적인 문제는 서비스 쪽과 사용자 쪽의 기본 전제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용자 쪽은 문제된 부분만을 정확히 짚어내서 빠르게 수리 완료가 되기를 바라고, 또한 그것이 우리 정서와 환경에 부합하는 방식인데 애플은 그 자리에서 바로 수리 여부 판정과 파트 교체를 해 주지 않습니다. 파트 교체도 큰 부품 단위인데다 수리 파트 수급이 빠르지 않아 생각보다 많이 기다리기 일쑤입니다. 현재 한국은 애플 코리아에 공인된 서비스 센터와 UBase와 계약된 서비스 센터로 나뉘어 있습니다.
미국은 어떨까요. 애플 스토어 ((위키 참조))에 직접 수리 부문을 갖추고 있어서 구입과 서비스가 한 곳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애플과 계약으로 운영되는 Authorized Service Providers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서비스 센터는 우리의 공인 서비스 센터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처음 ‘애플 체험 센터’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개념과 매장 디자인으로 선을 보였고 구입과 서비스를 한 곳에서 담당했는데, 어느 샌가 서비스 파트가 없어졌고 또한 이후 A#(에이 샵)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전체적인 매장 디자인이 애플 스토어와 다르게 돼 버렸습니다.
3. 미국 애플 스토어는 뭐, 다른가?
한국에도 생겼으면 하는 많은 애플 관련 부문 중 하나가 바로 애플 스토어입니다. 건물 벽을 커다랗게 장식한 흰 불빛의 애플 마크 밑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뤄 들고 나는 장면, 첫 개장 날 스탭들과 전날 밤을 세워 줄을 선 손님들 사이에 이뤄지는 하이파이브 입장 등, 사진 등으로 이미 많이 접했습니다만 실제로 운영되는 방식과 제품 전시 등은 애플을 좋아하는 사용자라면 한번 쯤 꼭 맛보고 싶은 경험이고, 때로는 ‘성지순례’의 일부로서 미국 방문 시 꼭 들러야 할 일정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우리와 다른 부분을 살펴보자면
전체적인 매장 레이아웃. Eight, Inc.라는 회사의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환한 배경과 편안해 보이는 목조 테이블에 온갖 맥과 아이팟, 아이폰이 시연을 위해 전시되어 있습니다.
스태프. Concierge(콘시어지), Specialist(스페셜리스트), Cashier(캐셔), Genius(지니어스), Creative(크리에이티브) 등 다양한 스태프가 있습니다.
콘시어지는 손님을 맞고 제품에 대한 질문, 답변, 구입을 돕습니다. 스태프는 입고 있는 유니폼–독특한 애플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에 따라 구분됩니다. 콘시어지는 오렌지색과 하늘색을 입습니다.
스페셜리스트는 기술적인 답변을 해 줍니다. 매장 곳곳에서 손님과 맥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스페셜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늘색을 입고 있더군요. 왼쪽 팔 언저리에 스페셜리스트라고 씌여 있습니다.
캐셔는 현재 없어졌다고 합니다. 콘시어지가 매장 곳곳에서 단말기로 즉석 결제를 돕습니다. 현금 구매자는 지니어스바 한켠에서 줄을 서서 결제를 기다랍니다.
지니어스는 지니어스바에서 일을 합니다. 보통 매장을 돌아다니지는 않더군요. 매우 바쁘게 보였습니다. 보랏빛 나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는 각종 이벤트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보지는 못 했습니다.
지니어스 바 ((위키 참조)). 지니어스 바는 애플 스토어의 독특한 부분이자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Heart and soul of our stores.” 애플 스토어에 대해서 Ron Johnson(론 존슨) 소매담당 수석 부사장이 자주 언급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매장마다 다른 구조겠지만 보통 한 쪽 벽을 모두 차지하고 높고 긴 바(bar)에 역시 높은 간편의자(stool)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제품 기술 문제를 상담해 주고 즉석에서 제품 수리를 해 주기도 하고, 제품 수리 여부 판정을 즉석에서 해 줍니다.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되어 ‘빨리’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안 맞는 정서적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플 스토어에서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경쟁률은 생각보다 대단한가 봅니다. 위키피디어 정보에 따르면 2002년 기준으로 16,438명 중 978명을 뽑았고 이는 약 5.95%의 비율이라고 하니 그 인기가 상당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매장에서 느낀 스태프들의 분위기는 즐기면서 일하는 것처럼 보였고 활기있는 모습으로 손님을 맞아 편안한 정보 공유와 질문, 답변이 이뤄지고 그만큼 손님의 구매로 자연스레 이뤄지는 듯한 모습입니다. 반대로 제가 만난 지니어스바의 지니어스(지니)는 제 바로 앞 손님 때문인지 굉장히 힘들어 하는 모습도 보여, 역시 서비스 업종의 힘든 환경이 미국, 애플 스토어라고 예외는 아닐 것 같았습니다.
4. 애플 스토어에 수리 예약을 하다
수요일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직접 매장을 찾기에는 늦은 시각이어서 일단 수리 예약을 시도했습니다. 애플 홈페이지에서 간편하게 이뤄집니다.
애플 서포트(support) 페이지에 접속하여 거주 지역을 선택하여 나온 화면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L.A. 동쪽 인근으로 빅토리아 가든스라는 커다란 쇼핑 ‘동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쇼핑몰이 있고 애플 스토어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다녀 본 곳이 몇 곳 안되지만 미국 매장은 밖에서 보는 면은 그리 크지 않은데 안쪽으로 깊숙하여 실제 매장 크기는 들어가면 더 크게 느껴지더군요. 이 매장도 애플 마크가 주는 그 매력은 다른 곳과 다르지 않습니다. 화면 오른쪽에서 원하는 메뉴를 선택합니다.
콘시어지라고 나오는 화면입니다. 실제 매장을 방문해도 입구에 서 있는 오렌지 혹은 하늘색 티셔츠 유니폼의 콘시어지 스태프가 있는데, 온라인 사이트에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같은 문구로 사용자를 맞이합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손님(guest)과 회원(member)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 애플 서비스에는 회원 제도가 없는데 이 곳에는 회원 제도가 있나 봅니다. 회원 관련하여 자세한 사항은 몰라서 넘어갔습니다. 손님 메뉴를 선택했습니다.
세부 항목이 나옵니다. 기술 지원을 받을 것인지 개인 구매에 대한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지, 워크샵에 참석 신청을 할 것인지 고르게 되어 있습니다. 기술 지원을 신청했습니다.
이번에는 기종 선택 화면입니다. 애플의 제품 분류에 따라 맥, 아이팟, 아이폰 등 세 가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맥북 에어이므로 맥을 선택했습니다. 실제 매장에 방문하면 지니어스바 앞에 같은 화면이 떠 있는 아이맥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퀵 드롭(quick drop)이라는 메뉴도 있습니다. 이것은 예약에 따른 기다림을 피해 제품만 맡겨 놓고 이상 여부 판정과 수리 여부, 비용 등을 나중에 전달 받을 수 있는 선택지라고 합니다. 실제로 아래에서 보듯 예약 시스템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문제가 발생한 사용자에게 수리 의뢰조차 며칠 후에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편할 리가 없겠지요.
예약 날짜 화면입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날짜는 토요일 뿐입니다. 제가 예약한 날이 수요일이니까 무려 삼 일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기다리더라도 그 날 바로 처리되는 ‘빨리빨리’ 환경이 그리워진 순간이었습니다.
날짜를 정하면 그 밑으로 시간대와 예약 시각이 정해집니다.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대략의 시간대를 정하는 것은 이해가 됐으나 분 단위까지 선택하는 옵션을 보니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시간 약속이 지켜질까 하는 의문이었죠.
예약이 확정되었다는 화면입니다. 대여섯 단계에 걸친 과정이었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는 화면 구성과, 비록 기다림은 필수겠으나 배려가 보이는 예약 시간대 구성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과제는 과연 어떻게 상황 설명을 하고 순조롭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미국 생활에서 언제나 겪고 고민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한 마디로, 아이폰의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습니다. 이 때까지 무려 5년은 앞선 기술이라고 자랑해 왔고 사용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뿌듯해 했고 구글이 만들었다는 지폰도 우습게 넘겨 버렸습니다. 실제로 그랬죠. 지폰은 앱 스토어에 필적하는 ‘마켓’을 오픈할 것이라는 정도의 뉴스만 남기고 흐물흐물 잊혀졌습니다. 지금도 팔리고는 있을테지지만 존재감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팜 프레. ((Palm Pre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puzit님이 조언을 주셨는데 다른 지적이 있었습니다. ‘프리’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번 2009 CES에서 확실히 주목을 받았습니다. 20분이 넘는 위 비디오를 한번 보기를 권유합니다. 이럴 수가하는, 그러고 싶은 기능이 한 둘이 아닙니다.
먼지 백 버튼. 팜 프레의 모양은 귀퉁이 둥그스름하게 빠진 것을 빼고는 위에서 보면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군더더기 없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폰에서는 홈 버튼이라고 이름 붙여서 어느 앱에서건 홈 스크린으로 돌아오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여기서 불편한 점이 생기는데 앱 간에 이동하려면 반드시 홈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앱을 처음부터 다시 실행시켜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어느 앱은 홈으로 돌아갔다가 와도 그 지점에서 계속 실행이 이어지지만 어느 앱은 그렇지 않습니다. 팜 프레는 홈 버튼이 아니고 백 버튼 ((위 리뷰에서는 백 버튼이라고 들었는데 루빈스타인의 공식 발표를 보니 Center Button이라고 되어 있네요.))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홈으로 가는 게 아니고 앱을 나열하는, 멀티태스킹(다중작업) 화면으로 돌아가는 버튼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체 화면을 차지하던 앱이 축소되면서 같이 실행 중인 다른 앱들과 병렬로 나란히 늘어서게 되고 사용자가, 마치 아이폰에서 사진을 넘기듯이, 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주 부드럽게 화면이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멀티태스킹 ((Cards라고 이름 붙였네요.))은 위 백 버튼과 더불어 아이폰과 정확히 차별되는 지점입니다. 어느 정도 성능을 내 줄지 모르나 위 비디오에서 보여진 바로는 꽤 괜찮은 편으로 보입니다. 저 데모 기기가 현재 시판 중인게 아니고 좀 더 다듬어질 것을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더 훌륭하게 나오겠지요. 홈 버튼이 없는 대신 아래 백 버튼 주위 부분 ((Gesture Area라고 하네요.))이 터치를 감지하는 역할도 합니다. 위로 슥 훑어주면 홈 화면이 화면을 덮으며 나타납니다. 또한 나열된 앱을 집어서 위로 보내면 앱을 종료하게 됩니다(그렇게 보입니다).
다음은 키보드입니다. 아이폰이 터치 기기라는 걸을 강력히 인식시켜주는 부분이 바로 키보드입니다. 화면 조작만 터치로 하는 게 아니고 입력도 터치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온전히 ‘풀 터치’라는 이미지를 아이폰이 선점해서 주장하는 역할을 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키보드입니다. 그런데 팜은 잡스가 아이폰 발표 당시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던 그 하드웨어 키보드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잡스가 기존 키보드를 화면에 보이면서 완전히 구시대 유물로 선을 좍 그어 버렸을 때 사용자들의 뇌리에는 어느 새 그런 인식이 자연스레 스며듭니다. 그게 잡스가 가진 힘입니다. 현실왜곡장이 바로 그것이죠. 그런 부담은 아랑곳 없는 듯 팜은 구시대적 키보드를 달고 나옵니다. 써 본 분들은 평가가 갈리지만 최소한 애플의 터치 방식 키보드 옹호론자라 하더라도 불편한 점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앞서 간 만큼 완전치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팜은 이런 부분을 어떻게 고려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 키보드를 넣었을까요. 실제로 시판되고 써 봐야겠지만, 일단 기존 방식을 따름으로써 안전, 친숙함 등을 고려했을 것 같습니다. 안전은 애플과 부딪힐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죠. 현재로서는 터치 방식 키보드를 구현함으로써 얻는 위험 부담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애플의 방식 외에 현저히 다른 뭔가를 보여주기에는 말입니다.
충전기. 굉장하지 않습니까. 자석을 이용해서 붙여 놓기만 하면 충전이 된다니 말입니다.
그 외 음악, 비디오, 이메일 등을 시연하는데 화면이 작아 잘 보이진 않아도 꽤 잘 만들었다고 생각될만큼 시연 장면이 부드럽습니다. 리눅스 기반의 웹오에스라고 이름을 붙였나 본데 팜의 기술력이 대단합니다. 팜은 트레오라는 스마트폰의 원조들 격에 속하는 기기를 이미 만든 경험이 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자, 애플이 최근 특허 운운하면서 열 받은 이유가 좀 감히 잡히지요. 그런데 더 크게 중요한 사실은, 바로 존 루빈스타인입니다. 넥스트 시절부터 잡스와 함께 일 했고 2006년까지 애플에서 아이팟을 담당했던 수석 부사장입니다. ((Senior vice president을 이렇게 해석하면 될런지?)) 이 분이 2006년 애플을 그만두고 잠시 공백을 거친 후 2007년 10월 팜으로 옮겨 갔습니다. 당연히 애플의 구석구석을 잘 알 수 밖에 없고 이번 팜 프레가 나오기까지 꽤 큰 역할을 한 것은 자명합니다. 위에 나열한 기술 중에서 홈 버튼과 키보드 빼고 애플에서 구현 예정이지 않은 기술이 있을까요? 전 이미 애플의 아이폰 로드맵 중에서 저와 같은 기술은 모두 들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면 놀랄만하지만 그렇다고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것들은 아니지요. 팜이 먼저 치고 나왔고 상당히 비슷한 손가락 움직임에 따른 화면 조작은 애플에서 경계를 가질 만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사실 멀티 터치 기술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기술 자체야 특허로 보호해도 다양한 구현과 자잘한 기술적 차이로 얼마든지 우회가 되는 게 저 기술이겠지요. 중요한 것은 인터페이스가 오히려 더 중요할 것입니다. 팜 프레는 그런 부분, 즉 아이폰의 화면 구성과 조작 부분을 꽤 연구하고 피할만큼 피하면서, 오히려 더 낫게, 루빈스타인의 머릿 속에 들어 있을 애플, 아이폰의 로드맵 중 일부를 미리 시장에 선 보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직 기술 타령 이나 신문에 오르내리는 우리 현실은 안타깝습니다. 이미 기술 자체의 구현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구현해 보일까 하는 단계에서 저들은 다투고 있는데 말입니다. 감압이니 정전압이니 하는 용어들을 입에 담는 자체가 너무 바보 같지요.
며칠 전 뉴욕 타임스에 기사가 하나 올랐습니다. 가십거리이긴 하지만 새로운 권력 관계를 보여주는 지표로 블랙베리가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단순히 이메일 주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최고의 지도자 그룹 중 한 사람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주변인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게 핵심입니다. 노트북으로도 데스크탑으로도 업무를 볼 수 있지만 사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키보드를 만질 일은 없습니다. 그는 아마도 서류에 서명하고 남들과 얘기하고 듣고 검토하고 보고 받는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일들, 컴퓨터를 쓸 일이 전혀 없는 수 많은 일에 쌓여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유일하게 집중하여 작은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아마도 하루에 수십 분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 혼자만의 시간 동안 뭔가를 해야 할 때 이용하는 게 바로 블랙베리입니다.
블랙베리의 성공은 오로지 이메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블랙베리는 가히 실시간 이메일이라고 할만큼 이메일을 보내고 받는데 탁월합니다. 최근까지 여러 모델이 나오지만 인가젯의 리뷰를 봐도 블랙베리의 여타 기능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웹브라우저의 느린 속도는 도저히 인내할 수준이 못 되어 보입니다.
그런 블랙베리, 그런 구시대적 키보드를 달고 있는, 애플이 주장에 의하면 퇴물이 될 기기 라인업에 팜 프레가 들어 왔습니다. 팜 프레는 분명히 아이폰류의 새로운 스마트폰 대열에 넣을 수도 있을만한 기기이지만 제 생각에 팜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팜은 기존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모양도 크게 다르지 않고 결정적으로 같은 방식의 키보드를 쓰면서도 훨씬 나은 성능과 조작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은 혼자이지만 팜 프레는 혼자가 아닌 것이죠.
지폰은 다음 버전이 나와야 아이폰과 견주어 볼만할 것 같고, 블랙베리는 아이폰과는 다른 지점의 단말기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윈도 7을 탑재한 단말기는 과거 마소의 경우처럼 일단 나와야 뭔가 끼워주든 말든 할 것이고요.
팜 프레.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그럴 듯한 기기이면서 기술적으로도 아이폰과 대적할만한 기기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비디오 리뷰만 보고 판단한 것이라는 전제이긴 합니다. 애플에서 공언한 5년을 앞선 기술은 불과 2년 만에 따라잡힌 것일까요.
(추가)
프레를 공개한 키노트 링크를 붙입니다. 누구인지도 모를 수 많은 사람들이 무대 위를 오가는군요. 애플이 발표의 임팩트는 역시 한 수 위.
“장밋빛”이라고 하면 좋은 전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12년 전 작디작은 오레건 시골 대학 타운에 1년 간 있을 때도 떠나기 전 누군가 ‘안 들어 올거냐’라고 물었을 때 내심 그런 기회가 있으면 과감히 ‘서울대 딱지’를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농반진반으로 대답했던 기억이 있고, 2년 전 태섭이가 미국에 갈 때도 혹 좋은 일이 있겠지, 하며 환송을 해 주었고, 게다가 대략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며 승승장구하는 다른 넘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즉 ‘ ‘장밋빛’ 전망 = 미국에 오는 일’의 공식이 대략 그려졌었다.
(10월 7일에 여기까지 작성, 이후 오늘 작성)
두 주 지난 지금. 여전히 장밋빛에 대한 의문이 든다. 난 가라앉는 나라에 들어 온 ‘느낌없는 쥐’가 아닐까. 본능이 작동하지 않는, 반대로 움직이는 쥐. 여기 누구도 미국적 장밋빛 얘기를 하지 않는 때가 됐다. 3%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으면서 25% 석유 소비를 미국에서 한다지.
미친거다. 장밋빛이 아니고, 검정빛, 오일빛이다. 얘들은 지들이 덕지덕지 검정 기름때가 끼어 몸집이 커지고 건강이 나빠지고 정신이 혼미해 지는 사실을 모른다. ‘누가 뭐라해!’라고 짐짓 못 들은 척, 안 들은 척, 그러고는 뒤에서 한 방 먹이며 지들끼리 낄낄대는 치사한 것들인 거다. 지들이 가라 앉으면서 감히 투자 의견을 내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해 왔다. 아직도 그러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