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진리 탐구’ Category

마이클 잭슨이 불쌍하다

Sunday, February 20th, 2022

http://doccho.net/2008/07/27/서태지가-불쌍하다-2/

위 글은 2008년 7월에 올린 내 글. 당시 시사인에 허지웅이 올린 글을 보고 내 감상을 적은 것. 벌써 14-5년 되는 얘기인데, 그새 우리는 UN 마이크로 우리 가수가 서는 역사를 갖게 됐고, 가수가, 개그맨이, 배우가 지지 후보 등 정치색을 내는 게 자연스러워진 시절을 맞았다.

15년 전, 허지웅은 거대한 문화 대통령이 한낱 불쌍할 따름이라고 뱉어 버렸다. 배반당한 우리 젊은 날에 대한 보상처럼. 입안에 맴도는 추억을 지워버리듯. 침 뱉듯이 툭.

오늘, 내 배반당한 20대는 물론이고, “잠들지 않는 남도”에서 “지리산”까지, 그리고 “광야”에서 “노동자”로, 마침내 “자유”를 갈망, 몸부림치며 뱉어 낸 그 <고백>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생각한다. 이역 땅까지 불려 와 엉터리들의 행적과 기억에 이용된 팝의 제왕이 불쌍할 따름이라고 할 밖에.

그 숭고하고 고귀한 자유를 갈망한 고백이 오늘 마이클 잭슨을 소환하여 발언하는 자유로 저열해진 이유는 뭘까, 생각한다.

2021

Friday, January 1st, 2021

뭔가 어정쩡하던 2020년이 끝났다. 사실 분명하지 않은 게 아니라 너무도 분명해서 분명 문제였던 한 해. 삶은 무엇이고, 산다는 건 또 무엇인가 하는 질문.

그 와중에 나이, 숫자, 사람, 관계, 자리, 돈, 과거, 기억 등등, 모든 과제가 언제 어디든 둥둥 떠다닌 일상. 모르긴해도 이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이렇게 해결 난망의 부유하는 이슈는 역사 상 많지 않았을 것. 일제 36년 중간에 태어났으면 이런 느낌일까. 비정상이 일상이 되는 삶. 전쟁 중이라면 이런 느낌일까.

그래도 주가는 오르고, 온라인/오프라인 쇼핑은 끝을 모르고, 돈은 어디든 넘쳐 보이는 오늘의 풍경.

어떻게든 이 기억은 평생 남겨놔야. 함.

오늘의 물음 –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Friday, February 9th, 2018

10년, 미국에 살았다. 앞 5년은 예상치, 뒷 5년은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고.

과연 오늘의 시간은 어디로, 무엇으로 평가될지.

기대도 되고, 겁도 나고.

하고 싶은 일: 아이들 책+기기 소모임

Friday, September 23rd, 2011

http://www.amazon.com/gp/bestsellers/digital-text/155009011

며칠 전 위 링크를 발견, 트윗으로 발행. 그러면서 든 생각.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계몽사 5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명작동화 전집이 있었고, 위인전 한 질이 있었다. 계몽사 백과사전도 있었고. 그 외 단권짜리 책들이 좀 있었던 편. 아마 더 있었을텐데 그 외 생각나는 것은 별로 없다. 정비석 삼국지와 초한지 1권, 손자병법 세 권 등도 기억이 난다. 남강서적 아저씨가 갈 때마다 칭찬해 주시고 그랬는데.

여하튼 내 독서 이력에 저 명작동화 전집은 빼 놓을 수 없는 기억이자 추억이고, 또한 자랑스러운 경험이다. 전집을 읽으며 쌓는 (어린) 내공에 대한 생각도 빼 놓을 수가 없다. 당시 책들은 비록 어린이용이었어도 편집에 있어, 두께 등에 있어서 그다지 요즘 어린이용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활자도 작고 두께도 다들 웬만큼 했다. 당연히 모든 책에 관심이 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전집이고 번호도 있기 때문에, 골라 읽어가며 반복해서 읽는 책이 있는 반면 손이 안 가는 책이 있기는 해도 결국 그 책들도 언젠가 한번 이상은 읽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인내, 재미, 상상력 등등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15소년 표류기는 열여섯 번을 읽었는데 고든과 브리앙의 대립과 아이들끼리 동굴과 움막을 지어 생활을 꾸려 간다는 설정은 지금 생각해도 참 짜릿한 것이었다.

자, 이런 경험을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이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아니하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서울말 쉽지? ㅎㅎ ((개콘 팬으로서, 서울말 시골말 해 가며 이어가는 요즘 개콘 꼭지는 꽤 불편)) ) 해서 생각해 낸 것이 제목처럼 아이들 책에 관련된 소모임. 말이 소모임이지 블로그나 포럼의 형태로 1단계 아는 아저씨들하고, 2단계 새로 알게 되는 학부모들과 떠드는 형태를 가져 보고 싶은 것이다. 혼자 자료 찾고 정리하고 하는 것보다, 우리가 좋아하는 기기, 요즘 같으면 킨들과 아이패드를 매개로 아이들에게는 좋은 책 정보와 아울러 아이들이 흥미를 갖는 새 기기들에 대한 갈증을 일부 풀어주면서 좋은 독서 습관으로 이끌고, 어른들은 그런 과정+기기에 대한 애정을 쌓으면서 또한 생활의 즐거움으로 이끌어 보는 것이다.

요즘 알비님이 무척 멋있는 포럼 리노베이션을 하셨는데, 그 귀퉁이가 참 탐나지만, 그건 아닌 거 같고(그 정도로 멋진 포럼에 대한 욕심일 뿐) 워드프레스로 호스팅하는 단순 블로그 형태로 다들 필자 참여를 하고, 기간을 두어 매니저 역할도 돌아가면서 하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 가령 일정 기간에 매니저가 된 분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블로그 모양도 좀 바꿔보고 모임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소위 ‘좌장’이 되시는 것. 책 리뷰까지는—해도 좋겠지만—안 해도 될 듯 하고, 그저 책 정보와 목록 등만 교류해도 참 좋겠다는 생각.

블로그 여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이런 생각이 공유되고 참여가 될까나…

2011년 7월 20일

Wednesday, July 20th, 2011

바로 오늘, 오늘을 잊지 못 할 것이다.

2011년 7월 20일. 이제껏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갈림길. 내가 선택했다, 결국.

Sunday, March 20th, 2011

이 곳 날씨도 한국스러워진다고, 이 곳에서 23년을 사신 분이 말씀하신다. 물론 한국만 못 하지만, 습도도 높아지고 비가 자주 오는 등, 변덕스러워진다고.

비.
비.

내 목마름을 적시는 비.

비.

피아구분

Sunday, April 18th, 2010

우리는 군필이지만, 노동자는 아닌가?

온 가족이 자기 잘못 아닌 일로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는 일이나 자기 삶의 터전을 잃고 울부짖으며 뜨거운 화염에 휩싸여 사그러지는 일은, 의무를 이행하다 의문투성이 일로 스러진 장병들 경우와 다른 것일까.

아이폰에서 보냄.

참인 명제 1

Monday, February 22nd, 2010

“변화하지 않고서는 진보할 수 없다.”

우리에게 떨어진, 이 험한 세상을 사는 우리들이 매일 고민해야 하는 문제.

아이폰에서 올림.

‘매킨토시’가 어울리는 풍경

Friday, March 13th, 2009

이렇게 제목을 붙여서 글타래를 만들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만… 당장 제 형편도 책과 맥의 멋진 하모니라고 보여드릴만한 ‘그림’은 안 나오네요…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올려 봅니다. 아래 링크는 비교적 맥 비호환적인(개인적인 짧은 경험에서 비롯되어 판단하는) 네이버 쪽 링크인데요. 가수 이 적 씨의 집 내부인데 알북으로 추정되는 맥이 있네요. 15″인지 17″인지는 잘 모르겠고요.

http://book.naver.com/bookshelf/story.nhn?startmonth=200810

저도 저희집 ‘친구들’과 어울려 넓직한 탁자에서 각자 자기 책이나 일을 하는 여유로움을 갖는 게 꿈 중 하나인데요. 그 때 한 켠에 ‘매킨토시’ ((애플이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언제 버렸는지 확실치 않은데 Mactracker로 찾은 정보에 의하면 파워 매킨토시 G3라는 이름까지는 사용이 됐군요. G4로 넘어 오면서 ‘파워맥’이라고 정식 명칭을 정했는데 그 직전 ‘아이맥’을 발표했으니 대략 1999년 전후로 ‘매킨토시’라는 이름은 사라진 듯 합니다. 컴퓨터 이름이면서도 참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름인데 이리 오래 사용 안 해 왔으니… 참 아쉽네요… ))가 놓여있도록 하는 게 또한 목표입니다. 어떤 ‘매킨토시’가 좋을 지 어떤 맥이 좋을 지,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는데 현재는 큐브를 갖고 있으니 1순위이긴 합니다. 실제 사용을 위해서는 당시 최신형 아이맥이지 않을까도 싶고요.

성공

Monday, February 23rd, 2009

“성공은 불확실의 연속이다.”

오늘 아내가 전화를 걸어 와 해 준 말이다. 어디선가 보고 전해 준 말.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확실한 성공이 과연 존재할까. 확실하다면 성공 못 할 사람이 있을까.

성공이란 말을 먼저 정의해야 할 일이긴 하다. 하지만 위 문장에서는 성공보다는 불확실, 연속이라는 낱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불확실로 나아갈 용기, 결단, 노력, 그것들이 없이 자신이 그린 성공을 맛볼 수 있을까. 또한 그 끝이 언제일 지 모를 불안의 연속을 끊임없이 헤쳐나가지 않고 과연 성공의 길에 다다를 수 있을까.

본질을 탐구하고 진정한 진리에 이르는 길. 어떤 길인지, 어떤 결과일 지 아직 알지 못 하나 이미 그 불확실의 연속선상 들어섰다. 남은 것은 오직 노력 뿐이다. 또한 그 일련의 불확실함을 이길 확실함은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