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시스템’ Category

사파리와 워드프레스

Friday, March 21st, 2008

본질 문제를 계속 붙들고 있는데, 웃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난 피씨(a.k.a 아범)를 쓰면서 내 자아에 손상을 입는 경험을 한다. 도무지 내가 설정하고 있는 논리적 사용 환경에 부응하지 않는 이 운영체계가 90% 넘는 세계적 점유율, 게다가 98%가 넘는 한국의 운영체제 점유율을 갖고 있다는 게, 또한 대항마가 여전히 빈곤한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이팟의 비약적인 성공이 윈도 사용자들을 끌어 들이면서 시작됐다는 사실도, 애플을 좋아하는 사용자로서 마음이 아픈 사실이다. 편 가르자는 얘기는 아니다. 자신의 환경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의 일종인데, 그렇다고 맥 사용자=진지, 명석하고 윈도 사용자=무뇌아, 이런 공식에 대한 얘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갖는다면 저렇게 90%가 넘는 점유율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무 대중에 대한 폄하를 하고 있는 걸까, 윈도 쓰는 대개의 사용자들이 별 고민 없이 선택했다라는 전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나 자신도 10여 년 전까지 열렬한 윈도 사용자였고 그 경험에 비춰볼 때, 또한 다양한 인간 세상에서 선택의 결과가 90%가 넘는 비율로 나타날 때,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는 ‘품목’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 컴퓨터 운영체제, 윈도는 분명 그 답이 아닐 것이라 생각이 된다.

어쩔 수 없는 사무 환경에서 수 개월 여 윈도를 쓰면서도 내내 헛바퀴도는 심정일 때가 많다. 해서 마련한 나름의 최저선은 맥오에스와 비슷한 환경으로 윈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가령 파이어폭스, 플록 등의 어플이 일차적인 선택이 되고, 다행히 요즘은 웹 환경에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구글, 딜리셔스, 플리커 등 웹 환경이 이차 ‘저지선’으로 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내 윈도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내 ‘자아붕괴’ 현상은 이렇게 근근히 발생 전 단계에서 두 단계 저지선 덕을 보고 있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일단 파일 관리 등의 차이는 정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포기하더라도, 이메일 관리와 웹 브라우저의 선택 문제이다. 자잘하게는 맥오에스의 익스포제 환경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고.

이메일 관리는 최근 닷맥 주도적 환경에서 지메일 환경으로 완전 이전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고민을 하고 있다. 나중에 따로 관련 글을 쓸 일이 있을 것이어서 생략하고, 웹 브라우저의 문제가 남는데 그게 이 글의 주제이다.

맥에서는 고민없이 사파리를 사용한다. 파이어폭스 3 베타4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업무용 페이지를 집에서 열 필요가 있을 때, 사무 환경을 고스란히 재연하고자 사용하는 것으로 최소한에 그친다. 최근 고민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플록인데(지금은 사무실 윈도 환경), 나름 ‘소셜 웹 브라우저’를 주장하며 각종 편의 사항을 담뿍 담고 있어서 자잘한 사용의 재미를 주고 있다. 아쉬운 두 가지 부분은, 기반이 되는 ‘파폭’이 3 버전이 나오는 시점에서 여전히 2 버전에 머물고 있고 1.1 버전 등 베타를 낼 때도 파폭 3 버전은 반영이 안되어서, 즉 파폭 3 버전 기반의 플록은 아직 먼 얘기여서 기다리가 힘들 것 같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맥용 파폭 3 베타 버전을 보면 사파리 대용으로 기대할만도 싶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유감스럽게도 맥용 플록은 맥용 사파리를 못 따라간다는 점이다. 반대로 윈도용 플록은 (이제 겨우 베타를 뗀) 윈도용 사파리보다 낫게 보인다.

윈도용 사파리는 며칠 전 업그레이드 돼서 베타 딱지를 뗐는데, 개인적으로는 화면 출력에서 마소 익스플로러나 파폭보다 더 마음에 든다. 속도도 나름 괜찮은 편이고. 아직 한글 관련, 특히 입력 부분은 답답한데 그럭저럭 참고 써 왔으나 오늘 발견한 워드프레스와 사파리 간 문제는 치명적이다.

워드프레스에서 사용되는 ‘비주얼’ 편집기는 오픈소스인 TinyMCE라는 데서 따서 쓴다는데, 이 편집기가 사파리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사파리에서 글을 편집하고 단락 구분을 주면 그 부분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려 글 전체가 ‘통문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기껏 잘 편집해 올려 놓고 무심코 사파리로 편집을 할라치면 갑자기 답답한 ‘통글’이 화면에 펼쳐지는 것이다. 책임 소재는 의견이 나뉘는데 구글 검색으로 알게 된 바로는 당장 해결책이 없을 듯 하다.

윈도는 그렇다치고, 맥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가 부딪힐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워드프레스의 대안과 사파리의 대안을 비교해 보면 일단 워드프레스의 승리. 맥에서는 다른 글 편집 방법을 써야 하겠다. 사파리가 좀 더 ‘본질스러운’ 어플이겠으나 원칙만 내세우는 옹고집보다 예외를 둘 줄 아는 지혜란 여기다 갖다 붙혀도 되지 않을까. 😆

엑토의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아닌 것 같다. 결국 ‘혐의’를 벗은 엑토를 잘 써 볼 수 밖에.

讀趙

Thursday, March 20th, 2008

, ‘읽는 나’, 이런 뜻풀이가 가능할까…

아래 아이디에 관한 내용이 담긴 글도 있지만, 언제나 본질의 문제에서 고심을 하게 된다. 케텔로 인터넷의 본류에 뛰어 들면서 20대 초년의 ‘어린’ 나이임에도 아이디에 관한 고민이 먼저 됐다. 요즘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서 주위를 보면 아이디를 정함에 그리 고민이 없는 것 같아 의아할 때가 있다. 물론 붙잡고 물어보면 다들 이런저런 이유가 있는 작명법을 내세우지만 평범한 숫자 조합이나 큰 의미를 갖지 않은 아이디로 정하는 경우를 왕왕 본다.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93년 초였지만, 폭발적 인터넷 사용의 흐름은 9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이뤄진 게 맞을 듯 싶다. 당시 다니던 대학에서 학교 계정을 자유로이 만들게끔 정책을 바꿔 시행을 시작했다. 원래는 도무지 창의적인 안을 낼 수 없게끔 아이디를 배포했던 기억이다. 학생들 아이디에는 정한 이름 뒤에 반드시 숫자를 넣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헌데 바뀐 정책에서도 ‘장유유서’ 덕분인지 아이디 만드는 시기에 학교 구성원 간 차등을 두었다. 교수, 교직원 먼저 만들고 학생은 나중에 만들게 한 것이다. 즉 먼저 교직원, 교수가 아이디를 만들면 나중에 학생은 원하는 아이디를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디 조합 체계는 대개 이름의 영문자 이니셜을 따랐을 때이기 때문에 겹치는 사례가 많을 것 같아 고육책으로 낸 듯 했다. 그리곤 중복된 아이디를 신청하면 숫자를 임의로 붙이거나 다른 아이디로 유도했던 것이다.

내 아이디는 다행히도, 꽤 고심하고 지은 노력 탓인지, 겹치는 아이디가 아니었다. 사실 흔한 조합이긴 한데 dr은 생각해도 doc는 생각들을 안 한 모양이다. 지금도 새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으니, 가장 ‘타격’이 큰 것은 네이버다. 웬만한 서비스는 다 ‘점거’를 했지만 네이버를 그닥 써 오지도 않았고 네이버에서 계정을 만들게끔 한 사실도 알지 못 했다. 타격이 크다는 것은 매우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다는 것보다 괜한 ‘상실감’, 미리 움직이지 못한, 빼앗긴 듯한 아쉬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써 놓고 보니 매우 유치한 생각인데…

그럭저럭 짧은 이메일 주소와 원하는 아이디를 얻은 탓에 ‘자랑스레’ 학교 아이디와 전자우편 계정을 잘 사용해 왔다. 지금도 쓰고 있는데 대개 스팸 편지가 우려되는 항목에 이 계정을 사용한다. 워낙 오래 된 것이다보니 스팸이 태반인 계정이다.지금 생각해도 아이디에 대한 내 결정은 잘 된 듯 싶고,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다. 괜히 ‘우쭐한’ 듯 해 보일 지 몰라도 실상 내 꿈과 오랜 훗날의 내 모습을 계속해서 투영해 보는 소중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루에 내 아이디를 몇 번이나 자판에 쳐 넣어 보는지 세 보진 않았지만 족히 수십 번은 될 듯 싶다.

십수 년의 인터넷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개념과 기술, 서비스의 등장으로 나날이 새롭고, 또한 혼란스러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나름 따라잡으려 노력도 하고 취사선택을 통한 선택과 배제의 논리를 만들어 절제를 하곤 있지만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갈망은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한겨레를 중간에 일년 반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결혼 전부터 꾸준히 구독하여 매일 아침 40분 내지 한 시간여를 변기 위에서 읽는 것 + 알파를 시행하느라 아내와 장모님의 ‘조 서방 딴 집 살림’이라는 비난도 마다 않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아내에게 나중에 서점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가 결혼 초기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반 진반의 웃음기 약간 섞인 ‘씨츄에이숀’도 있었다. 또한 그걸로 부족해서 첫번째 인터넷 신문이라는 모 사이트에서 열독자를 뽑았다면 초기 구성원으로 족히 명함을 들이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아침 신문과 9시 뉴스 시청 외에는 많이 줄여 오고 있었는데, 최근 블로그, 블로깅에 대한 고심의 결과로 RSS 구독도 조심스레 시작해 보고 있다. 헌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피드’(공급)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일단 돌아다니면서 선정하여 열 개 안쪽으로 구독을 해 보고 있다. 하루에 열 개 안팎의 새 글이 등록되는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블로깅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담는 행위이기 때문에, 또한 요즘 정보에 대한 ‘대우’는 최소한 출처의 링크 내지 인용이 기본적 소양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하나의 글 속에 걸린 링크까지 본다치면 새 글의 수는 급격히 늘어난다. 인용된 링크는 또 어떤가.

결국 절제에 대한 원칙이 없으면 계속 바다에서 허우적 대는 셈이 된다. 이걸 체계적으로 해 보기 위해 구글 북마크, 딜리셔스를 번갈아 써 보고 있는데, 일단 하나의 서비스에 ‘올인’하는 것이 향후 편한 환경 구축에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지라 그런 서비스 자체에 대한 ‘심사’도 병행해야 한다. 물론 알비님의 포럼에 들르는 것과 글타래 읽기와 답글 달기, 관련 해외 정보 살피기 등은 기본 중의 기본적인 사항이다.가히 ‘읽는 중’ 팻말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할 지경이다.

‘개점휴업’이었던 지난 독초닷넷 블로그에서는 doccho의 해석을 홀로 독, 독 독 등의 음산한 의미로 파생시켜 보고자 했는데 이젠 자연스레 ‘읽을 독’의 독이다.

읽는 나. 읽고 있는 나. 내 본질에, 내가 원하는 모습에 한 발짝 가까이 간 모습이다. 블로깅이 내 본질을 향한 여정, 진리를 향한 여정에서 훌륭한 도구가 되고 있다.

교육과 ‘사회적 인터넷’의 접목

Tuesday, March 18th, 2008

‘소셜 네트워킹’ = ‘사회적 인터넷’이라고 하면 어색할까요. 내용을 적기에 앞서 용어에 대한 고민을 해 봅니다. 기왕이면 우리 말로 옮겨보고 의미를 되짚어 보는 버릇을 갖고 있는데 범람하는 ‘영어(를 그대로 발음으로 옮기는) 한글’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학문을 앞장세워 얘기 해 보면 작게는 용어, 크게는 학문적 언어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그 문화적 역량을 엿볼 수 있고 그 학문이 그 문화배경에서 어떻게 뿌리 내리고 연구되고, 활용 되는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영어에 대한 ‘맹종’은 개인의 문제라고 왈가왈부할 수준을 훌쩍 넘어서서 전 (한국)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최근의 ‘오륀지’ 발음 ‘사태’는 그 실상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는 것이겠고요.

http://gatorlog.com/?p=890

굳이 영어교육이라고 한정하신 이유를 정확히는 몰라도 일단 보편타당한 ‘상식’선에서 한국 사회에 접목할 수 있는 현실적 서비스는 영어의 한계를 벗어 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잠시만 교육 관련 서비스에 대해 신경 쓰고 싶은 게 제 희망이지만, 어쨌거나 발 딛고 서 있는 상황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제라서, 또한 다른 데 개설한 블로그의 주제가 iTunes Store에 대한 것이다보니 팟캐스트, 그 중에서도 iTunes U 서비스에 대한 글을 써 볼까 생각하던 중, 위 글을 접한 김에 평소 생각한 바를 풀어 내 보고 여러 각도에서 공유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위 글에서 어학과 기술의 접목이 썩 재미를 못 본 이유로 피드백, ‘디지털적 사고’의 부재가 언급되었는데, 이러한 것은 점점 더 자라는 인터넷 기술과, 제가 그리도 좋아하는 애플의 기술이 접점을 이뤄 새로운 효과와 시장을 훌륭히 창출해 가고 있는 중이고 극복될 조짐이 보이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언젠가 꼭 써 보고 싶은 주제인데) 아이팟의 등장과 iTunes의 거대한 톱니바퀴 체계는 정작 애플 자신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라고들 할만큼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에 따라 작은 톱니바퀴들이 여러 군데, 여러 개, 여러 모양으로 계속 발생과 분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스탠포드 대학을 필두로 iTunes U 서비스의 등장은 비록 작게 시작은 했지만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또한 아이팟-아이튠스 성공의 열쇳말로 앞에 등장할만한 주제인데 사실 iTunes U는 팟캐스트의 새로운 서비스 형태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재 진행되는 것으로 봐서는 단순히 ‘Pod(꼬다리)’ 속에서만 꿈틀거리기에는 등재되는 정보의 질과 양이 지금까지 우리가 인터넷에서 진행해 온 ‘모임(게시판)’, ‘검색’ 등을 훨씬 넘어설 수 있는 수준의 정보 유통원(근원 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될 정도로 근사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iTunes 얘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원래 주제인 교육과 ‘사회적 인터넷’의 접목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여전히 산업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한 교육이라는 주제와 ‘사회적 기술’, ‘사회적 공유’, ‘사회적 인적 관계’ 등의 용어를 ‘매치’시켜 보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그리 많이 언급될만한 ‘뜨거운’ 주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까지 확인됐던 바로는, 국가 기간 사업이라 할 수 있는 통신업체인 하나로통신을 넘어 시가총액 기준 코스닥 2위로 뛰어 오른 업체가 다름아닌 메가스터디라는 사교육 업체라는 사실을 볼 때 선뜻 이해가 안 될 수 있는데, 메가스터디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소위 ‘2.0’ 시대의 참여와 공유라는 열쇳말에서 파생된 서비스 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메가스터디의 서비스는 그저 오프라인 학원 서비스가 좀 더 큰 ‘학생 대중’을 상대로 온라인 형태로 강의를 팔고 사는 형태로 ‘둔갑’ 했을 뿐이고요. 게다가 제공되는 동영상도 스튜디오 강의 위주로 하던 것을 현장 강의를 그대로 동영상화한, ‘오프라인, 온라인인 척 하기’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사회적 인터넷’에서 필요한 것이 피드백과 디지털 기술의 적절한 사용에 있다고 한다면 교육과 접목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메가스터디의 현란한 ‘홈피’는 그저 미미한 수준의 댓글이나 기존 게시판 형태로도 충분한 질문/답변의 마당만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기술은 그나마 타 경쟁업체보다 낫긴한데 단순함의 미학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고요.

하물며 ‘사회적 인터넷’을 언감생심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몰라도 비슷한 시도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약간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공부가 적어 정확한 지 잘 모르겠지만) 소위 ‘오픈 마켓'(열린 시장?)도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고객 접점을 형성하면서 성장해 온 것이라 전제한다면 이베이나 옥션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지마켓의 존재도 상당할 것입니다. 2년 전 지마켓에서 영어 교육과 관련한 신규 사업 진출을 기획하며 인력 충원을 했는데 ‘황송하게도’ 면접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열린 공간’이라는 지마켓의 핵심역량과 영어 교육을 어떻게 접목시킬 지 나름 생각도 해 보고 구상도 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중에 신문 한 면에 작게 동정 기사 정도로 소개 된 걸 보았고 썩 잘 된 기획이 아니었나하고 생각했지요.

위 아거님 글에서 타고 간 뉴욕타임스 기사에 소개된 라이브모카, 그 정도의 기획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시기 문제였을 수도, 내용 구성의 문제(윗 라인 최종 결제라는 게…)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교육이라는 게 일방적인 전달로만 인식하는 게 여전한 우리 인식의 수준인 것은 사실이고 뭔가 달라질 만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 순간 다시 10년 전,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 놓고 싶어하는 세력이 온존하는 것도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 가운데 ‘SNS+edu’라고 외친다면 그건 ‘지식 보부상’에 지나지 않는, 50여년 이상 지식의 샘에 걸터 앉아 ‘삥 뜯고’ 있는 그런 부류의 일종이 아닐까요. 하긴 거리 이름인지 새로운 흐름인지 몰라도 책 이름 하나로 ‘신세 고친’ 신데렐라들도 있는 것을 보면 ‘이슈 선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따라서 일단 “사이트부터 올려”놓고 보라거나 “리포트부터 만들라니까” 하는 이야기가 귀에 쟁쟁하게 걸리는 제 현실이 그리 허황된 것만은 아닐 듯 싶습니다.

모래밭에서 놀면 신발, 옷에 모래 들어가고 도서관에서 놀면 옷깃을 여미며 발꿈치 들고 다니는게 현실이니 좋은 기획이 있으면 여기 대한민국에서도 교육 사이트 하나가 훌륭히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 가는 장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적 상황’을 운운하는 미디어가 넘쳐나는 가운데 속속 ‘한글화’ 메뉴로 상륙하는 미국의 서비스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교육 서비스도 그리 되는 게 빠른 길이 아닐까요. ‘혓바닥도 서양인처럼’ 빼 준다는 뉴스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말입니다. ‘한국적 상황’을 운운하면서도 ‘발음은 미국인처럼’ 해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한 말이죠.

ps. 아거님의 글 링크를 계속 걸게 됩니다. 요즘 애플/맥만으로 기술을 들여다 보던 것을 좀 확장해서 살피다 보니 그동안 지나쳤던 주옥같은 자료들에 대한 ‘다시보기’를 한다고나 할까요. 아거님의 글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 티를 내는 것이고요. ^^;;
글 쓸 때 독백인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구분하는 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경어체로 적어 봅니다.

[composed and posted with ecto]

직업이 존재를 규정한다

Friday, March 14th, 2008

http://gatorlog.com/?p=943

제목 그대로 베껴오면 이상할 것 같아서 바꾼 제목을 달아 본다. 위는 아거님의 블로그 중 해당 글 주소.

도대체 뭔 소리?

(다행이다. 옆 자리 동료가 철학과 졸업자! 얻어 들은 바를 내 식으로 풀자면)

(아래 어디 글에서 내 아이디 얘기도 했지만) 이제껏 내 직업으로 내 존재를 알리겠다, 스스로 내 존재를 완성해 가겠다라고 생각하고 살아 온 나로서는 반대로 생각해 본다. 존재로 직업을 규정해 갈 때는 아니지 않을까. 앎의 끝이 어디일까. 내 존재를 완전히 안다는 게 불가능한 현실에서, 즉 나날이 새로운 나를 느끼며 (대개 타협적, 비겁함으로 바뀌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내 존재의 ‘존재’에 대해 놀라는 현실에서 ‘나’를 앎으로 ‘행함’을 이뤄가겠다, 완성해 가겠다 하는 것은 호사가 아닐까. 나랑 친한 ‘누구’ 말로는 ‘철없는 소리’라고 늘 면박을 주던데…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리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내 존재를 내가 규정함으로써 내 행위/삶에 대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누군가 내 존재를 탐구하고 내 ‘행위’를 규정해 주는 수고는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 아닐까. 똘망한 눈길로 ‘아빠’를 외치는 우리 두 넘의 아들들도 내가 넥타이를 멜 때와 청바지+운동화를 걸쳤을 때 회사, 학교로 아빠의 행선지를 구분하는 놀라운 직감/판단력을 가졌는데 과연 이들의 그런 이해와 ‘이해(배려)’가 어린 아이들이어서만이겠는가.

소통의 대상인 타인에게 내 존재를 봐 달라는 말은 내 짐을 져 달라는 소리로 들릴까 두렵다. 내가 뭘 하는지 봐 주는 관심/배려를 고마워해야 하는 세상이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 않은가. ‘나쁜 놈 홍길동은 도둑’이라는 말과, ‘도둑 홍길동은 나쁜 놈’이라는 말 중에서 어느 편이 와 닿는가. 세상은 후자에 더 편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타인을 편하게 배려하는 내 ‘존재’는 좀 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블로깅이, 새롭게 존재를 규정해 가는 도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블로깅으로 직업/행함을 만들어 가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직업으로 블로깅을 하면서 실착하는 사례도 보인다. 위에 친한 ‘누구’는 요즘 내 ‘컴퓨터로 읽는 행위’에 대해 잔소리가 현저히 줄어 들었다. 되려 잘 해 보라고 격려도 해 준다. 뭐가 될 지 노심초사 7년을 날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아 가라고 등을 떠 민다.

그럼 맥북 에어. 그걸 사야 한다. – -;; 내 존재를 규정해 주는 다른 고마운 툴, 애플. – -;;

ps. 아거님 블로그에 ‘디카’님이 답글을 다셨다. 게다가 내가 올린 글타래 링크도. 우연이 아니다. 맥북 에어… – -b

[composed and posted with ecto]

Pro

Thursday, February 28th, 2008

http://www.apple.com/pro/profiles/
http://www.apple.com/business/profiles/
http://www.apple.com/science/profiles/
http://www.apple.com/itpro/profiles/ 

프로. 전문가라고 하면 좋을까. 가끔 위 사이트들을 가 본다. 여러 모양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이야기에 매킨토시를 버무려 놓고 있다. 다분히 애플 제품 홍보 사이트라는 면이 두드러지지만, 그런 유치한 생각은 접고 일단 그 내용에 빠져 본다면 여러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고 각자 자기의 분야에 맞는, 최소한 비슷한 경우를 찾을 수 있다.

전문가. 용어의 혼란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글을 쓰거나 접할 때 한자말을 되새기게 된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 오로지 하나의 문이라고 하면 될까. 국어사전의 말 풀이에 의하면 <집중 연구 + 지식/경험 풍부>로 요약할 수 있다. 집중 연구한 이력이 있어야 하며 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함을 증명까지 해야 전문가 소리를 들을성 싶다.

자칭 전문가입네, 전문가연 하는 사람들이 극도로 늘어난 현대사회지만 여전히 전문가에 대한 대접은 융숭하고 그 전단계로서 평가는 물렁한 편이다. 게다가 불행히도 아직 전문가군에 포함되는 직업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19세기에서 20세기 어디 쯤에 머물러 있어서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기란 생각보다 쉽다. 얼마 전 신 모 씨의 경우도 바로 이런 전문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그가 집중 연구하여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었는지, 그런 요소들이 발휘되었는지, 또한 그런 지식과 경험이 어떻게 채용과 사회적 지위 획득에 기여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지위를 가짐과 동시에 그런 것들이 자동 부여 됐는지 등, 여러 사회 병폐와 맞물려 새로운 전문가 상을 조명할 기회를 잠깐이나마 언론에서 제공해 준 바도 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들어 온 박사, 즉 박사 학위에 대한 부모님, 특히 아버지 및 친가 계열 분들의 열망은 가히 높고 높아서, 지금 내가 자랑스러워 마지 않는 내 아이디 독초, doccho도 여기서 비롯된 내 고뇌의 결과물이다. 애플 열렬 사용자로서 ‘부끄럽게도’ 이 아이디를 처음 사용한 것은 인터넷이 막 대중적으로 태동한 시기, 1990년대 초반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름 심혈을 기울인 MSN, Microsoft Network, 서비스였다. 당시 하이텔 아이디를 바꿔주는 단발 행사가 있어서 그 뒤 내 아이디는 doccho로 오로지 되었다.

독초. 어디 가서 내 아이디를 말하면 통상 듣던 것은 ‘의사십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럼 내 대답은, 왜 살짝 까칠하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닥터가 의사만 뜻하는 것은 아니지요’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만든 그 아이디는 Ph. D. doctor의 세 글자를 따고 내 성 cho를 뒤에 붙인 것인데 그 전에 봤던 ‘백투더퓨처’라는 영화에서 극중 마티가 ‘닥’하며 브라운 박사를 부르는 데서 그 쓰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나도 닥터=의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른들 세계에 대한 반발은 당시 내게도 당연한 것이지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송가 ‘박사’는 어린 내 머리에도 오랫동안 인이 박혀서 그런 것인지 좋은 뜻으로만 해석되어 있었다. 박사=전문가=교수 등등이 아니던가. 뭐든 자신의 필요와 흥미대로 뜻을 펼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모두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지금도 내가 최고로 꼽는 학자적 명예를 가장 일선에 놓을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 바로 박사, 교수 등의 전문가였던 것이다. 한창 청춘을 고민할 때 (지금도 이렇게 회자되는 지 모르겠지만)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하는 기초적 전제에서 봐도 ‘박사’는 최고의 직업군이라 여겨졌다.
요즘 누구 말로는 부부 교수 25년에 3-40억은 축에도 못 든다는 말이 있지만 난 그 때도, 지금도 돈이 우선일 수 없다고 여긴다. 자식 키우는 아버지 입장에서 달리 말할 거리는 있지만 그건 본질과 다른 논외로 하고.

그제 사무실 후배에게 말한 바 있는데, 학연, 지연 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기제이고, 여전히 그 표지는 사람을 평가하는데 최우선으로 고려되고는 있지만, 과거와 달리 그 표지와 다른 표지를 먼저 선 보이며 평가를 요청할 때 ‘치워’라는 인식은 사라져 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대표적으로 이런 블로그를 보자. 어디서 나고 자랐고 어디 나왔는지 (여전히 중요할 수 있겠지만) 먼저 그 요소를 놓고 글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최고의 만화를 그려도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여전하다해도 대중은 그 만화가를 여전히 뜨겁게 사랑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소위 ‘넷심’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의 발단은 맥북 에어다. 상주하다시피 하는 알비님의 포럼에서 맥북 에어에 대한 글이 활발히 올라오고 자연스레 나도 ‘프로’가 아님을 선언하고 ‘에어처럼 자유롭게’ 살아 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일단 기존의 ‘프로다움’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 것이다.

(맥북 프로를 쓰면 프로고, 맥북을 쓰면 프로가 아닌 ‘범인’이다라는 유치함은 여기에 발 붙일 곳이 없다. 이렇게 한 자락 깔아 놓아야 하는 세태와 글로 전달하기의 어려움에 아쉬움은 남지만 읽는 자나 쓰는 자(나 자신)나 모자라긴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불가결한 일로 생각된다)

프로다움. 전문가다움. 다시 뜻풀이에 기댄다면 연구(공부)와 그로 인한 지식/경험의 우러남에서 그 ‘움’스런 기운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전에는 그런 연구, 지식, 경험이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 그리고 알량한 졸업장으로만 확인되고, 확인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학연, 지연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되는 그 기제와 별도로 다른 기제가 함께 돌아가고 인정 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반대로 졸업장만으로, 박사학위만으로 25년을 교수라고 떠들고 다닐 수도 없다. 이미 우리는 전과는 다른 검증과 평가의 패러다임 변화를 맞이했다.

맥북 프로를 쓴다고 전문가이겠는가. 사진기를 무시로 갈아치운다고, 자칭 사진 전문가입네 교수입네, 한들 그게 전문가이겠는가. 도구는 익혀 쓰는 손에 따라 다른 가치를 내 뿜는 것이고 내가 캐논 D1을 써도 그건 그냥 일개 사진일 뿐, 작품이 아니다. 과연 내가 지향하는 전문가로서 가치가 ‘움’스럽게 나타나려면 얼마나 공부하고 경험으로 보여져야 할까. 나는 10여 년을 애플 제품을 써 왔으므로 애플 전문가일까.

시대가 인정하는 ‘프로다움’은 어느 정도일 지 궁금하다. 진정 맥북 프로가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으려면 얼마나 더 가야할까. (실제로 이사가 된 사례를 빗대) 주변에 잠시 ‘자기 기안’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런 자기 기안 내지 기만 없는 진정한 전문가의 도구는 뭐가 되어야 할까. 오늘의 의문이다.

[composed and posted with ecto]

Englishman in New York – To Be a Star

Saturday, February 23rd, 2008

 

Opinion: 유튜브 한국판이 뜬 지 시간이 흘렀다. 미디어들은 국내에 미치는 반향을 계산하느라, 그리고 대개는 깎아 내리느라 지면을 할애했다. 요는 결국 성공이 어려울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특별히 ‘한국적 상황’에 대한, 예의 그 이유를 대며 말이다.

Fact: 나는 판도라 티비 등을 이용하지 않는다. 요즘 내 주위 사람들이 내개 자주 하는 말은, “조수연 씨는 매일 영어로 된 사이트만 보네’라는 것이다. 나는 맥오에스 텐도 영문 메뉴 우선 구성으로 사용한다. 2MB는 ‘영어몰입교육’을 한단다. 결정적으로 나는 미국에, 지극히도 가고자 하고 있다.

Opinion: 위 유튜브 링크의 데이빗 최를 알게 된 것은 “You Tube” (A Love Song) – Original Song – Acoustic Version 위 링크를 보고 나서다. 한 마디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처음 그 링크 댓글에는 눈이 풀렸다는 둥, 약을 하냐는 둥, 이상한 댓글도 달렸지만 본 사람 수가 증명하듯, 그리고 현재 그의 유튜브 채널이 구성되는 걸 보면 이런 반응은 그야말로 무시할만한 반응이다.

Fact: 그는 영어를 사용한다. 선명한 그의 이름 Choi.

Opinion: 한국적 상황은 과연 무엇인가. 유튜브는 한국적 현실에 맞지 않고 아래의 그는 한국적 현실에 부합하는 현상인가.

Fact: 유튜브 한국판에 대한 기사에는 어김없이 아래 링크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guitar 

아래는 보너스.
http://phobos.apple.com/WebObjects/MZStore.woa/wa/viewAlbum?i=355011&id=355033&s=14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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