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의 웹 열풍에서 오늘 날 플랫폼으로서의 웹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리어 2001년 발표된 디지털 허브 전략과 파워맥 G4 큐브 발표는 아이맥에서 시작된, 미적 감각이 극대화된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이어가려는 애플의 전략이다, 라고 평가하는 것이 당시 분위기를 잘 반영한 분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넷은 이러한 하드웨어의 판매를 위한 날개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이런 애플의 모습은 70년대 개인 컴퓨터 시대를 열어 80년대 대중화된 개인 컴퓨터 시장을 활짝 만개시킨 애플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당연한 귀결이고 이후 비컴퓨터 기기 분야에서 커다란 성공으로 자리매김한 아이팟으로도 이어지는 애플의 비약적인 재기 모습입니다. 이후 하드웨어와 디자인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재료가 바로 애플과 아이팟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혹 iTMS(2003)를 아이팟 성공의 첫째 요소라고 보는 분석이 있지만 이것은 ‘달 대신 손가락’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팟의 성공은 이미 2001년 발표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애플의 거대한 전략, 디지털 허브의 단초로서 아이팟은 등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발표된 디지털 허브는 지금 시각으로 본다면 매우 당연한 일상이지만 당시에는 애플의 하드웨어 판매를 위한 선전 문구라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맥 오에스 텐 이전부터 디지털 환경을 준비하는 모습-아이무비(맥오에스 8, 1999), 아이튠스(맥오에스 9, 2001)-을 고려할 때 이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닙니다.
아래 비디오 링크는 2001년 5월에 발표된 아이북 광고 클립입니다.
아이북 광고 중에서 유명한 이 광고를 보고 저 빛나는 흰색 애플 마크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음악과 사진, 비디오 클립을 엮어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광고 주인공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군요!). 위 광고는 디지털 허브 개념을 손에 잡힐 듯한 일상으로 잘 포착하여 사례화 시킨, 잘 만든 광고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하드웨어가 여전히 중요해 보이고 그 매혹에 못 이긴 구매 행동을 자연스럽게 합리화 시키기 위해 미디어 속 주인공과 나를 일체화하는 경험을 선사해 주기도 한 광고였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디지털 허브 전략을 이어가며 애플은 2003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라이프를 발표합니다. 당시 맥 오에스는 10.1이었습니다. 아이라이프는 이름 그대로 우리 일상에 그대로 스며들 듯 사용될 수 있는 애플의 역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악, 사진, 비디오 등의 재료를 가지고 몇 번의 클릭과 쉽고 재미있는 작업 과정을 거치면 그야말로 일상 생활을 고스란히 디지털화 시킬 수 있었고 이러한 ‘작품’은 거실의 티비와 주변 사람들에게 편하게 나눠 줄 수 있는 시디 형태로 ‘발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래 비디오 링크는 2004년 1월 아이라이프 발표 중 개러지 밴드 부분입니다.
이 클립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키노트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키노트를 컴컴한 피씨방에서 윈도용 퀵타임으로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개인적으로 개러지 밴드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지만 이 클립을 보면서 애플의 갖는 우리들 일상에 관한 상상력에 감탄하고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보편화된 일상으로 음악과 사진의 디지털화가 받아들여지는 시점에서 ‘창작’의 일반화를 우리가 꿈꿀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애플에게 하드웨어는 그 자체로 기업의 핵심 영역이자 영혼입니다. 허브로서의 맥, ‘아이 + 라이프’를 즐기는 도구로서의 맥이 애플이 추구하는 바였던 것입니다. iTMS, iTunes 등 아이팟을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여러 환경이 제공되기에 앞서 아이팟은 그 흰 색과 은빛 뒷모습의 102% 조화로움을 가진 예술 작품 그 자체였습니다.
아래 비디오 클립은 2001년 가을 잡스가 아이팟을 처음 대중에 선 보인 작은 이벤트 모습니다. 배터리에 관해 설명하는 잡스의 눈을 한번 보시죠. 음악을 담는 그릇이 어떠해야 하는지 애플은 철저히 연구하고 또 연구했던 것입니다.
당시 환율이 굉장히 올라서 399불짜리 아이팟이 국내 가격으로 79만원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엄청난 가격이었지만 중고 매물을 매일 뒤지며 그 우아한 모습을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싶었죠.
2008년 1월, 애플은 맥북 에어를 발표합니다. Air. 공기처럼 가볍다는 뜻도 좋지만 Wireless를 대신하는 말로 쓰임새가 돋보이는 작명입니다. -less는 뭔가 없음을 뜻하는 접미사입니다. 에어에는 뭐가 없을까요. 무게, 배터리 착탈불능, 광드라이브 등등 없는 것 투성입니다. 아래 클립은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은 바로 이렇게 ‘빈 노트북’임을 보여줍니다. 즉 진정 얇고 가벼워지려면 없애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애플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기본 개념에 충실하되 그 빈 곳을 절묘하게 채우는 다른 수단과 개념의 제시 전략을 잘 보여줍니다.
에어에 없는 게 또 있습니다. 바로 하드 디스크 용량입니다. 테라 바이트가 우습게 회자되고 오로지 성능과 용량으로 치닫는 컴퓨터 산업의 흐름에서 ‘역주행’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 맥북 에어는 기실 인터넷 열풍이 막 태동하던 시점에서 제창된 NC 개념의 변주라고 할 만합니다. NC의 핵심은 디스크가 없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연결성이었습니다. NC가 너무 시대를 앞서 갔다는 아쉬움을 맥북 에어는 애플과 잡스 특유의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새롭게 개념을 세웁니다. 하드 디스크는 온존하되 용량을 최소화하고 연결성은 극대화 시키되 무선으로 바꾼 것입니다.
따라서 2000년대 초 허브로서의 맥에서 간편한 ‘연결 지점’으로서의 맥으로, 새롭게 애플의 하드웨어 개념을 정립하고자 하는 첫 주자가 바로 맥북 에어이며, 이런 의미에서 NC의 변주라기 보다 새로운 NC 개념을 세웠다고 평가해야 옳을 것입니다.
연결성의 극대화는 아이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분화된 기종 별 오에스 텐 개발팀의 사례에서 보듯 애플은 ‘getting connected’ 환경에 최적화되는 여러 기기를 선 보이고 그에 맞는 오에스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갑니다. 아이팟의 성공을 전화기와 융합하여 새로운 분기점으로 삼아 연결성에 기반한 맥과 휴대기기라는 양 산맥 하드웨어 전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의 최종 마침표(당분간이나마)는 바로 오늘 발표된 ‘모블 미’ 서비스입니다. 우선 개인정보, 전자우편, 사진 등을 실시간으로 연결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로 시작하는 모블 미는 구글의 모습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위 책은 ‘이쪽 편’ 대 ‘저쪽 편’의 관점으로 최근 구글로 대표되는 소위 ‘2.0 시대’에 대한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마이크로소프트로 대표되는 ‘이쪽 편’과 구글로 대표되는 ‘저쪽 편’이 존재하고 역사는 ‘저 쪽’으로 흘러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연결’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시장과 우리의 생활을 바꿔 가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애플은 어느 쪽일까요.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제조업의 강자라 할 ‘완고한 일본’과 더불어 70년대 출발하여 80년대 만개하고 어려움과 새로운 도약을 한 90년대를 거친 애플도 전통적인 ‘이쪽 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플은, 애플의 하드웨어는 ‘지는 해’로서 서서히 기울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애플은 이미 위에서 살펴 보았듯 어느 샌가 ‘저쪽 편’ 기업으로 방향을 틀었고 애플의 ‘이쪽 편’ 하드웨어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저쪽 편’ 서비스에 맞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 가시적인 출발이 바로 맥북 에어와 아이폰인 것입니다. ‘저쪽 편’의 대명사 구글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 엄청난 수의 서버를 돌리고 있습니다. 애플은 눈에 보이는 서버의 모습으로 (백업이라는 개인적인 용도를 내세워) 타임캡슐을 은근히 시작했고 어느 새 무선 연결을 대세로 만들었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하드웨어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 지점을 서서히 우리 생활 속에 구축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 애플은 디지털 허브와 아이라이프의 도구로서의 맥이 아닌 연결 도구로서의 맥을 만들고 있는 ‘저쪽 편’ 기업입니다. ‘Back to My Mac’으로 외부에서도 집에 있는 내 맥과 서버(타임캡슐)에 접속할 수 있고, 내 정보와 사진 등 디지털 미디어를 언제든 웹과 연결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 20기가에 달하는 홈 폴더를 제공합니다(모블 미).
이제 아이라이프를 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여자친구에게,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밤 새워 비디오 클립을 편집하기 보다 간편한 휴대 기기로 날 것 그대로의 클립을 유투브에 올려 공유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수십 기가에 달하는 음악을 하드 디스크에 채워 넣고 셔플 기능으로 원하는 음악을 찾기 보다 그냥 집에서 동기화 연결로 채워진 아이팟 셔플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음악, 사진, 영상 등 관리가 수반되고 노력이 더해져야 빛을 발하는 ‘My Life with iLife’는 이제 ‘My Life, always connected’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원하는 음악은 아이팟/폰으로 바로 구입해 듣고 사진은 그대로 내 홈피에 올려집니다. 편집의 노력은 이제 ‘대중(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거나 좀 더 ‘프로-암’다운 작업에 어울리는 다른 도구로 이뤄질 것입니다. 맥북 에어의 액세서리가 텐서브, 맥 프로, 아이맥이라는 말은 전혀 농담만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모블 미. 이제는 ‘저쪽 편’에서 건재한 애플의 새 서비스는 ‘활동적인 나’, ‘나를 움직이는 그 무엇’으로 개념을 잡아갈 것입니다. 그 움직임은 여전히 맥을 통해서, 아이폰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다만 그 역할을 하게 되는 맥은 허브가 아닌, 삶의 동반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less적’ 맥(/아이폰)이 될 것입니다. ‘왼손은 그저 거들 뿐…’처럼 맥은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와 미디어를 전달해 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도구의 우아함은 결코 저쪽 편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 손 안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http://albireo.net과 http://doccho.net에 발행됩니다.
본질 문제를 계속 붙들고 있는데, 웃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난 피씨(a.k.a 아범)를 쓰면서 내 자아에 손상을 입는 경험을 한다. 도무지 내가 설정하고 있는 논리적 사용 환경에 부응하지 않는 이 운영체계가 90% 넘는 세계적 점유율, 게다가 98%가 넘는 한국의 운영체제 점유율을 갖고 있다는 게, 또한 대항마가 여전히 빈곤한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이팟의 비약적인 성공이 윈도 사용자들을 끌어 들이면서 시작됐다는 사실도, 애플을 좋아하는 사용자로서 마음이 아픈 사실이다. 편 가르자는 얘기는 아니다. 자신의 환경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의 일종인데, 그렇다고 맥 사용자=진지, 명석하고 윈도 사용자=무뇌아, 이런 공식에 대한 얘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갖는다면 저렇게 90%가 넘는 점유율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무 대중에 대한 폄하를 하고 있는 걸까, 윈도 쓰는 대개의 사용자들이 별 고민 없이 선택했다라는 전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나 자신도 10여 년 전까지 열렬한 윈도 사용자였고 그 경험에 비춰볼 때, 또한 다양한 인간 세상에서 선택의 결과가 90%가 넘는 비율로 나타날 때,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는 ‘품목’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 컴퓨터 운영체제, 윈도는 분명 그 답이 아닐 것이라 생각이 된다.
어쩔 수 없는 사무 환경에서 수 개월 여 윈도를 쓰면서도 내내 헛바퀴도는 심정일 때가 많다. 해서 마련한 나름의 최저선은 맥오에스와 비슷한 환경으로 윈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가령 파이어폭스, 플록 등의 어플이 일차적인 선택이 되고, 다행히 요즘은 웹 환경에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구글, 딜리셔스, 플리커 등 웹 환경이 이차 ‘저지선’으로 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내 윈도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내 ‘자아붕괴’ 현상은 이렇게 근근히 발생 전 단계에서 두 단계 저지선 덕을 보고 있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일단 파일 관리 등의 차이는 정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포기하더라도, 이메일 관리와 웹 브라우저의 선택 문제이다. 자잘하게는 맥오에스의 익스포제 환경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고.
이메일 관리는 최근 닷맥 주도적 환경에서 지메일 환경으로 완전 이전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고민을 하고 있다. 나중에 따로 관련 글을 쓸 일이 있을 것이어서 생략하고, 웹 브라우저의 문제가 남는데 그게 이 글의 주제이다.
맥에서는 고민없이 사파리를 사용한다. 파이어폭스 3 베타4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업무용 페이지를 집에서 열 필요가 있을 때, 사무 환경을 고스란히 재연하고자 사용하는 것으로 최소한에 그친다. 최근 고민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플록인데(지금은 사무실 윈도 환경), 나름 ‘소셜 웹 브라우저’를 주장하며 각종 편의 사항을 담뿍 담고 있어서 자잘한 사용의 재미를 주고 있다. 아쉬운 두 가지 부분은, 기반이 되는 ‘파폭’이 3 버전이 나오는 시점에서 여전히 2 버전에 머물고 있고 1.1 버전 등 베타를 낼 때도 파폭 3 버전은 반영이 안되어서, 즉 파폭 3 버전 기반의 플록은 아직 먼 얘기여서 기다리가 힘들 것 같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맥용 파폭 3 베타 버전을 보면 사파리 대용으로 기대할만도 싶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유감스럽게도 맥용 플록은 맥용 사파리를 못 따라간다는 점이다. 반대로 윈도용 플록은 (이제 겨우 베타를 뗀) 윈도용 사파리보다 낫게 보인다.
윈도용 사파리는 며칠 전 업그레이드 돼서 베타 딱지를 뗐는데, 개인적으로는 화면 출력에서 마소 익스플로러나 파폭보다 더 마음에 든다. 속도도 나름 괜찮은 편이고. 아직 한글 관련, 특히 입력 부분은 답답한데 그럭저럭 참고 써 왔으나 오늘 발견한 워드프레스와 사파리 간 문제는 치명적이다.
워드프레스에서 사용되는 ‘비주얼’ 편집기는 오픈소스인 TinyMCE라는 데서 따서 쓴다는데, 이 편집기가 사파리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사파리에서 글을 편집하고 단락 구분을 주면 그 부분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려 글 전체가 ‘통문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기껏 잘 편집해 올려 놓고 무심코 사파리로 편집을 할라치면 갑자기 답답한 ‘통글’이 화면에 펼쳐지는 것이다. 책임 소재는 의견이 나뉘는데 구글 검색으로 알게 된 바로는 당장 해결책이 없을 듯 하다.
윈도는 그렇다치고, 맥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가 부딪힐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워드프레스의 대안과 사파리의 대안을 비교해 보면 일단 워드프레스의 승리. 맥에서는 다른 글 편집 방법을 써야 하겠다. 사파리가 좀 더 ‘본질스러운’ 어플이겠으나 원칙만 내세우는 옹고집보다 예외를 둘 줄 아는 지혜란 여기다 갖다 붙혀도 되지 않을까. 😆
엑토의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아닌 것 같다. 결국 ‘혐의’를 벗은 엑토를 잘 써 볼 수 밖에.
제목 그대로 베껴오면 이상할 것 같아서 바꾼 제목을 달아 본다. 위는 아거님의 블로그 중 해당 글 주소.
도대체 뭔 소리?
(다행이다. 옆 자리 동료가 철학과 졸업자! 얻어 들은 바를 내 식으로 풀자면)
(아래 어디 글에서 내 아이디 얘기도 했지만) 이제껏 내 직업으로 내 존재를 알리겠다, 스스로 내 존재를 완성해 가겠다라고 생각하고 살아 온 나로서는 반대로 생각해 본다. 존재로 직업을 규정해 갈 때는 아니지 않을까. 앎의 끝이 어디일까. 내 존재를 완전히 안다는 게 불가능한 현실에서, 즉 나날이 새로운 나를 느끼며 (대개 타협적, 비겁함으로 바뀌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내 존재의 ‘존재’에 대해 놀라는 현실에서 ‘나’를 앎으로 ‘행함’을 이뤄가겠다, 완성해 가겠다 하는 것은 호사가 아닐까. 나랑 친한 ‘누구’ 말로는 ‘철없는 소리’라고 늘 면박을 주던데…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리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내 존재를 내가 규정함으로써 내 행위/삶에 대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누군가 내 존재를 탐구하고 내 ‘행위’를 규정해 주는 수고는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 아닐까. 똘망한 눈길로 ‘아빠’를 외치는 우리 두 넘의 아들들도 내가 넥타이를 멜 때와 청바지+운동화를 걸쳤을 때 회사, 학교로 아빠의 행선지를 구분하는 놀라운 직감/판단력을 가졌는데 과연 이들의 그런 이해와 ‘이해(배려)’가 어린 아이들이어서만이겠는가.
소통의 대상인 타인에게 내 존재를 봐 달라는 말은 내 짐을 져 달라는 소리로 들릴까 두렵다. 내가 뭘 하는지 봐 주는 관심/배려를 고마워해야 하는 세상이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 않은가. ‘나쁜 놈 홍길동은 도둑’이라는 말과, ‘도둑 홍길동은 나쁜 놈’이라는 말 중에서 어느 편이 와 닿는가. 세상은 후자에 더 편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타인을 편하게 배려하는 내 ‘존재’는 좀 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블로깅이, 새롭게 존재를 규정해 가는 도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블로깅으로 직업/행함을 만들어 가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직업으로 블로깅을 하면서 실착하는 사례도 보인다. 위에 친한 ‘누구’는 요즘 내 ‘컴퓨터로 읽는 행위’에 대해 잔소리가 현저히 줄어 들었다. 되려 잘 해 보라고 격려도 해 준다. 뭐가 될 지 노심초사 7년을 날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아 가라고 등을 떠 민다.
그럼 맥북 에어. 그걸 사야 한다. – -;; 내 존재를 규정해 주는 다른 고마운 툴, 애플. – -;;
ps. 아거님 블로그에 ‘디카’님이 답글을 다셨다. 게다가 내가 올린 글타래 링크도. 우연이 아니다. 맥북 에어… – -b
프로. 전문가라고 하면 좋을까. 가끔 위 사이트들을 가 본다. 여러 모양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이야기에 매킨토시를 버무려 놓고 있다. 다분히 애플 제품 홍보 사이트라는 면이 두드러지지만, 그런 유치한 생각은 접고 일단 그 내용에 빠져 본다면 여러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고 각자 자기의 분야에 맞는, 최소한 비슷한 경우를 찾을 수 있다.
전문가. 용어의 혼란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글을 쓰거나 접할 때 한자말을 되새기게 된다. 專門家 그 집으로 들어가는 오로지 하나의 문이라고 하면 될까. 국어사전의 말 풀이에 의하면 <집중 연구 + 지식/경험 풍부>로 요약할 수 있다. 집중 연구한 이력이 있어야 하며 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함을 증명까지 해야 전문가 소리를 들을성 싶다.
자칭 전문가입네, 전문가연 하는 사람들이 극도로 늘어난 현대사회지만 여전히 전문가에 대한 대접은 융숭하고 그 전단계로서 평가는 물렁한 편이다. 게다가 불행히도 아직 전문가군에 포함되는 직업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19세기에서 20세기 어디 쯤에 머물러 있어서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기란 생각보다 쉽다. 얼마 전 신 모 씨의 경우도 바로 이런 전문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그가 집중 연구하여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었는지, 그런 요소들이 발휘되었는지, 또한 그런 지식과 경험이 어떻게 채용과 사회적 지위 획득에 기여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지위를 가짐과 동시에 그런 것들이 자동 부여 됐는지 등, 여러 사회 병폐와 맞물려 새로운 전문가 상을 조명할 기회를 잠깐이나마 언론에서 제공해 준 바도 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들어 온 박사, 즉 박사 학위에 대한 부모님, 특히 아버지 및 친가 계열 분들의 열망은 가히 높고 높아서, 지금 내가 자랑스러워 마지 않는 내 아이디 독초, doccho도 여기서 비롯된 내 고뇌의 결과물이다. 애플 열렬 사용자로서 ‘부끄럽게도’ 이 아이디를 처음 사용한 것은 인터넷이 막 대중적으로 태동한 시기, 1990년대 초반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름 심혈을 기울인 MSN, Microsoft Network, 서비스였다. 당시 하이텔 아이디를 바꿔주는 단발 행사가 있어서 그 뒤 내 아이디는 doccho로 오로지 되었다.
독초. 어디 가서 내 아이디를 말하면 통상 듣던 것은 ‘의사십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럼 내 대답은, 왜 살짝 까칠하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닥터가 의사만 뜻하는 것은 아니지요’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만든 그 아이디는 Ph. D. doctor의 세 글자를 따고 내 성 cho를 뒤에 붙인 것인데 그 전에 봤던 ‘백투더퓨처’라는 영화에서 극중 마티가 ‘닥’하며 브라운 박사를 부르는 데서 그 쓰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나도 닥터=의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른들 세계에 대한 반발은 당시 내게도 당연한 것이지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송가 ‘박사’는 어린 내 머리에도 오랫동안 인이 박혀서 그런 것인지 좋은 뜻으로만 해석되어 있었다. 박사=전문가=교수 등등이 아니던가. 뭐든 자신의 필요와 흥미대로 뜻을 펼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모두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지금도 내가 최고로 꼽는 학자적 명예를 가장 일선에 놓을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 바로 박사, 교수 등의 전문가였던 것이다. 한창 청춘을 고민할 때 (지금도 이렇게 회자되는 지 모르겠지만)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하는 기초적 전제에서 봐도 ‘박사’는 최고의 직업군이라 여겨졌다. 요즘 누구 말로는 부부 교수 25년에 3-40억은 축에도 못 든다는 말이 있지만 난 그 때도, 지금도 돈이 우선일 수 없다고 여긴다. 자식 키우는 아버지 입장에서 달리 말할 거리는 있지만 그건 본질과 다른 논외로 하고.
그제 사무실 후배에게 말한 바 있는데, 학연, 지연 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기제이고, 여전히 그 표지는 사람을 평가하는데 최우선으로 고려되고는 있지만, 과거와 달리 그 표지와 다른 표지를 먼저 선 보이며 평가를 요청할 때 ‘치워’라는 인식은 사라져 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대표적으로 이런 블로그를 보자. 어디서 나고 자랐고 어디 나왔는지 (여전히 중요할 수 있겠지만) 먼저 그 요소를 놓고 글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최고의 만화를 그려도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여전하다해도 대중은 그 만화가를 여전히 뜨겁게 사랑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소위 ‘넷심’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의 발단은 맥북 에어다. 상주하다시피 하는 알비님의 포럼에서 맥북 에어에 대한 글이 활발히 올라오고 자연스레 나도 ‘프로’가 아님을 선언하고 ‘에어처럼 자유롭게’ 살아 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일단 기존의 ‘프로다움’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 것이다.
(맥북 프로를 쓰면 프로고, 맥북을 쓰면 프로가 아닌 ‘범인’이다라는 유치함은 여기에 발 붙일 곳이 없다. 이렇게 한 자락 깔아 놓아야 하는 세태와 글로 전달하기의 어려움에 아쉬움은 남지만 읽는 자나 쓰는 자(나 자신)나 모자라긴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불가결한 일로 생각된다)
프로다움. 전문가다움. 다시 뜻풀이에 기댄다면 연구(공부)와 그로 인한 지식/경험의 우러남에서 그 ‘움’스런 기운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전에는 그런 연구, 지식, 경험이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 그리고 알량한 졸업장으로만 확인되고, 확인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학연, 지연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되는 그 기제와 별도로 다른 기제가 함께 돌아가고 인정 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반대로 졸업장만으로, 박사학위만으로 25년을 교수라고 떠들고 다닐 수도 없다. 이미 우리는 전과는 다른 검증과 평가의 패러다임 변화를 맞이했다.
맥북 프로를 쓴다고 전문가이겠는가. 사진기를 무시로 갈아치운다고, 자칭 사진 전문가입네 교수입네, 한들 그게 전문가이겠는가. 도구는 익혀 쓰는 손에 따라 다른 가치를 내 뿜는 것이고 내가 캐논 D1을 써도 그건 그냥 일개 사진일 뿐, 작품이 아니다. 과연 내가 지향하는 전문가로서 가치가 ‘움’스럽게 나타나려면 얼마나 공부하고 경험으로 보여져야 할까. 나는 10여 년을 애플 제품을 써 왔으므로 애플 전문가일까.
시대가 인정하는 ‘프로다움’은 어느 정도일 지 궁금하다. 진정 맥북 프로가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으려면 얼마나 더 가야할까. (실제로 이사가 된 사례를 빗대) 주변에 잠시 ‘자기 기안’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런 자기 기안 내지 기만 없는 진정한 전문가의 도구는 뭐가 되어야 할까. 오늘의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