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 주례 연설 3

Saturday, February 7th, 2009

http://www.whitehouse.gov/blog_post/compromise1/

슬슬 식상할 때가 됐습니다. 언제까지 굿뉴스, 배드뉴스만 외칠 수 있을까요. 의회에서 일단 정부 안을 지지하는 모습인 것 같은데 지켜볼 일입니다. 외부요인이든 내부요인이든 좋은 결과, 그게 국민들이 원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단 미국 대통령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Picture 14.png

오늘은 주례 연설보다 다른 것에 주목을 하고 싶습니다. 백악관 첫 화면은 네 개의 탭을 담은 사진이 초기 화면에 뜨는데 볼 때마다 느끼지만 사진이 참 좋다고 할까요, 주인공인 오바마 대통령 말고 그 이면을 보여주는 화면을 볼 때마다 신기하면서도 재미 있습니다.

우리 대통령께서 ‘닌텐도’ 발언으로 또 한바탕 바람을 몰고 오셨죠. 충분히 ‘지시’하실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뜨거운 국내 웹의 반응에 더욱 흥미가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오마바 대통령도 그런 ‘지시’ 비슷한 걸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동차 연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점은 오바마 행정부는 법으로 그러한 기술 개발에 대한 압박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 다 ‘지시’의 형태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미국은 한술 더 떠서 법안으로까지 강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자동차 연료를 제한하는 법안과 닌텐도 같은 게임기 개발을 강제하는 법안은 좀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장에 맡길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공통점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며칠 전 오바마 대통령의 그 ‘지시’ 뉴스를 보고 의아해 하다가 닌텐도 같은 게임기 개발을 ‘지시’하신 대통령의 모습도 그리 낯설지 만은 않았습니다.

지시든 법을 통한 강제이든 공감대와 하나의 목표가 설정되어 같이 뛰면 얼마나 좋을까요. 굳이 두 대통령의 지시를 구분한다면,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국정 이슈 중 하나인 에너지와 환경 문제에서 자동차 대체 연료 문제는 응당 고민되고 기술 개발도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즉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지만, 이명박 행정부에서 게임기 개발은 과연 어느 국정 이슈에 맞출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생기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그냥 경제를 살리자, 돈을 벌자, 창의력을 높이자와 같은 두루뭉술한 구호 속으로는 당연히 포섭되겠지만 그런 구호는 누구나 외칠 수 있는 공허한 것이니까요. 정교함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앞뒤가 맞는 주장이 펼쳐질 때 비록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이라 하더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뜬금없다, 이 표현이 딱 맞겠습니다. 많이들 말씀하시는대로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만 봐도 과연 게임기의 사회적 효과를 고려한 발언이겠느냐, 그냥 내 뱉은 거 아니냐는 시각이 옳아 보입니다.

다시 위 사진 얘기로 돌아가자면, 일단 취임 초기니까 좋게 봐 주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만 그보다 진심으로 좋게 봐 주고 싶은 것은, 일관성이 있다는 것, 그 중에서도 자신의 정책 방향을 설정하면서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을 모두 아우르는 미국민들에 대한 발언임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저렇게 이면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진짜 오마바 행정부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신뢰를 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뢰. 이건 아무렇게나 얻는 게 아니지요. 최소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취임 전부터 신뢰의 문제로 시달린 이명박 정부는 이걸 얻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고민하는 지 묻고 싶네요.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말입니다. 또한 신뢰는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한테만 해당하는 게 아니지요. 나를 반대한 사람들의 신뢰, 좋아하고 따르게 바꿀 수는 없을 지라도 최소한 내 방향에 대한 믿음은 상대방에게도 심어줄 수 있어야 진정한 신뢰가 쌓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5년 단임제에서는 아쉽게도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간이 매우 한정적으로 정해져 있지요. 앞으로 딱 6개월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썰물과 밀물

Friday, March 28th, 2008

커뮤니케이션의 딜레마와 관객들의 변덕 : 올블 사태에 부쳐

민노씨민노씨님1께서, 기대 한 바대로 굉장히 잘 정리해 올려 주셨다.

들 때가 있으면 날 때도 있는 것이겠지. 어제 일찌감치 쌍방 당사자2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됐고, ‘아랫 벽돌 빼내기’와 그 행동에 대한 ‘고려 없음(나아가 해 본적 없음까지)’을 확인하고 크게 실망했다. ‘골 빈’ 블로깅에는 어이 없음까지…

블코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 다음 블로거뉴스나 이올린이 대안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평소 자근자근 씹어대는 사람의 블로그를 가 보는/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야금야금 올블에 계속 들락날락 할 것 같지만, 일단 회원 탈퇴는 했다. 보통 탈퇴에 따른 아이디 복구가 안되기 때문에 비슷한 경우 ‘마음으로부터 지우기’만 해 왔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리 느끼게 된다.

가만 결론을 내려보면 내 이 모든 행위의 A to Z는 블로그라는 매체에, 그 중 하나, 그 대표 선수격인 올블에 대한 애정에 있지 싶다. 남들 간다고 따라 가는 성격은 절대 못 되지만 이번 ‘썰물’엔 일단 동참한다. 언젠가 밀물처럼 들어 오고 싶을 때가 분명 있으리라는 기대도 함께 하며.

‘블로그(거)의, 블로그(거)에 의한, 블로그(거)를 위한’ 올블. 그 정신을 살려/살리기 위해 제대로 아파하기 바란다.

  1. 아이디 부르는 방법, 나아가 직함 붙여 이름 부르는 관습에 대해서는 향후 포스팅 하고 싶은 주제임 []
  2. 희주, 올블 []

讀趙

Thursday, March 20th, 2008

, ‘읽는 나’, 이런 뜻풀이가 가능할까…

아래 아이디에 관한 내용이 담긴 글도 있지만, 언제나 본질의 문제에서 고심을 하게 된다. 케텔로 인터넷의 본류에 뛰어 들면서 20대 초년의 ‘어린’ 나이임에도 아이디에 관한 고민이 먼저 됐다. 요즘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서 주위를 보면 아이디를 정함에 그리 고민이 없는 것 같아 의아할 때가 있다. 물론 붙잡고 물어보면 다들 이런저런 이유가 있는 작명법을 내세우지만 평범한 숫자 조합이나 큰 의미를 갖지 않은 아이디로 정하는 경우를 왕왕 본다.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93년 초였지만, 폭발적 인터넷 사용의 흐름은 9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이뤄진 게 맞을 듯 싶다. 당시 다니던 대학에서 학교 계정을 자유로이 만들게끔 정책을 바꿔 시행을 시작했다. 원래는 도무지 창의적인 안을 낼 수 없게끔 아이디를 배포했던 기억이다. 학생들 아이디에는 정한 이름 뒤에 반드시 숫자를 넣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헌데 바뀐 정책에서도 ‘장유유서’ 덕분인지 아이디 만드는 시기에 학교 구성원 간 차등을 두었다. 교수, 교직원 먼저 만들고 학생은 나중에 만들게 한 것이다. 즉 먼저 교직원, 교수가 아이디를 만들면 나중에 학생은 원하는 아이디를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디 조합 체계는 대개 이름의 영문자 이니셜을 따랐을 때이기 때문에 겹치는 사례가 많을 것 같아 고육책으로 낸 듯 했다. 그리곤 중복된 아이디를 신청하면 숫자를 임의로 붙이거나 다른 아이디로 유도했던 것이다.

내 아이디는 다행히도, 꽤 고심하고 지은 노력 탓인지, 겹치는 아이디가 아니었다. 사실 흔한 조합이긴 한데 dr은 생각해도 doc는 생각들을 안 한 모양이다. 지금도 새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으니, 가장 ‘타격’이 큰 것은 네이버다. 웬만한 서비스는 다 ‘점거’를 했지만 네이버를 그닥 써 오지도 않았고 네이버에서 계정을 만들게끔 한 사실도 알지 못 했다. 타격이 크다는 것은 매우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다는 것보다 괜한 ‘상실감’, 미리 움직이지 못한, 빼앗긴 듯한 아쉬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써 놓고 보니 매우 유치한 생각인데…

그럭저럭 짧은 이메일 주소와 원하는 아이디를 얻은 탓에 ‘자랑스레’ 학교 아이디와 전자우편 계정을 잘 사용해 왔다. 지금도 쓰고 있는데 대개 스팸 편지가 우려되는 항목에 이 계정을 사용한다. 워낙 오래 된 것이다보니 스팸이 태반인 계정이다.지금 생각해도 아이디에 대한 내 결정은 잘 된 듯 싶고,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다. 괜히 ‘우쭐한’ 듯 해 보일 지 몰라도 실상 내 꿈과 오랜 훗날의 내 모습을 계속해서 투영해 보는 소중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루에 내 아이디를 몇 번이나 자판에 쳐 넣어 보는지 세 보진 않았지만 족히 수십 번은 될 듯 싶다.

십수 년의 인터넷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개념과 기술, 서비스의 등장으로 나날이 새롭고, 또한 혼란스러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나름 따라잡으려 노력도 하고 취사선택을 통한 선택과 배제의 논리를 만들어 절제를 하곤 있지만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갈망은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한겨레를 중간에 일년 반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결혼 전부터 꾸준히 구독하여 매일 아침 40분 내지 한 시간여를 변기 위에서 읽는 것 + 알파를 시행하느라 아내와 장모님의 ‘조 서방 딴 집 살림’이라는 비난도 마다 않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아내에게 나중에 서점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가 결혼 초기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반 진반의 웃음기 약간 섞인 ‘씨츄에이숀’도 있었다. 또한 그걸로 부족해서 첫번째 인터넷 신문이라는 모 사이트에서 열독자를 뽑았다면 초기 구성원으로 족히 명함을 들이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아침 신문과 9시 뉴스 시청 외에는 많이 줄여 오고 있었는데, 최근 블로그, 블로깅에 대한 고심의 결과로 RSS 구독도 조심스레 시작해 보고 있다. 헌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피드’(공급)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일단 돌아다니면서 선정하여 열 개 안쪽으로 구독을 해 보고 있다. 하루에 열 개 안팎의 새 글이 등록되는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블로깅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담는 행위이기 때문에, 또한 요즘 정보에 대한 ‘대우’는 최소한 출처의 링크 내지 인용이 기본적 소양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하나의 글 속에 걸린 링크까지 본다치면 새 글의 수는 급격히 늘어난다. 인용된 링크는 또 어떤가.

결국 절제에 대한 원칙이 없으면 계속 바다에서 허우적 대는 셈이 된다. 이걸 체계적으로 해 보기 위해 구글 북마크, 딜리셔스를 번갈아 써 보고 있는데, 일단 하나의 서비스에 ‘올인’하는 것이 향후 편한 환경 구축에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지라 그런 서비스 자체에 대한 ‘심사’도 병행해야 한다. 물론 알비님의 포럼에 들르는 것과 글타래 읽기와 답글 달기, 관련 해외 정보 살피기 등은 기본 중의 기본적인 사항이다.가히 ‘읽는 중’ 팻말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할 지경이다.

‘개점휴업’이었던 지난 독초닷넷 블로그에서는 doccho의 해석을 홀로 독, 독 독 등의 음산한 의미로 파생시켜 보고자 했는데 이젠 자연스레 ‘읽을 독’의 독이다.

읽는 나. 읽고 있는 나. 내 본질에, 내가 원하는 모습에 한 발짝 가까이 간 모습이다. 블로깅이 내 본질을 향한 여정, 진리를 향한 여정에서 훌륭한 도구가 되고 있다.

직업이 존재를 규정한다

Friday, March 14th, 2008

http://gatorlog.com/?p=943

제목 그대로 베껴오면 이상할 것 같아서 바꾼 제목을 달아 본다. 위는 아거님의 블로그 중 해당 글 주소.

도대체 뭔 소리?

(다행이다. 옆 자리 동료가 철학과 졸업자! 얻어 들은 바를 내 식으로 풀자면)

(아래 어디 글에서 내 아이디 얘기도 했지만) 이제껏 내 직업으로 내 존재를 알리겠다, 스스로 내 존재를 완성해 가겠다라고 생각하고 살아 온 나로서는 반대로 생각해 본다. 존재로 직업을 규정해 갈 때는 아니지 않을까. 앎의 끝이 어디일까. 내 존재를 완전히 안다는 게 불가능한 현실에서, 즉 나날이 새로운 나를 느끼며 (대개 타협적, 비겁함으로 바뀌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내 존재의 ‘존재’에 대해 놀라는 현실에서 ‘나’를 앎으로 ‘행함’을 이뤄가겠다, 완성해 가겠다 하는 것은 호사가 아닐까. 나랑 친한 ‘누구’ 말로는 ‘철없는 소리’라고 늘 면박을 주던데…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리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내 존재를 내가 규정함으로써 내 행위/삶에 대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누군가 내 존재를 탐구하고 내 ‘행위’를 규정해 주는 수고는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 아닐까. 똘망한 눈길로 ‘아빠’를 외치는 우리 두 넘의 아들들도 내가 넥타이를 멜 때와 청바지+운동화를 걸쳤을 때 회사, 학교로 아빠의 행선지를 구분하는 놀라운 직감/판단력을 가졌는데 과연 이들의 그런 이해와 ‘이해(배려)’가 어린 아이들이어서만이겠는가.

소통의 대상인 타인에게 내 존재를 봐 달라는 말은 내 짐을 져 달라는 소리로 들릴까 두렵다. 내가 뭘 하는지 봐 주는 관심/배려를 고마워해야 하는 세상이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 않은가. ‘나쁜 놈 홍길동은 도둑’이라는 말과, ‘도둑 홍길동은 나쁜 놈’이라는 말 중에서 어느 편이 와 닿는가. 세상은 후자에 더 편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타인을 편하게 배려하는 내 ‘존재’는 좀 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블로깅이, 새롭게 존재를 규정해 가는 도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블로깅으로 직업/행함을 만들어 가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직업으로 블로깅을 하면서 실착하는 사례도 보인다. 위에 친한 ‘누구’는 요즘 내 ‘컴퓨터로 읽는 행위’에 대해 잔소리가 현저히 줄어 들었다. 되려 잘 해 보라고 격려도 해 준다. 뭐가 될 지 노심초사 7년을 날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아 가라고 등을 떠 민다.

그럼 맥북 에어. 그걸 사야 한다. – -;; 내 존재를 규정해 주는 다른 고마운 툴, 애플. – -;;

ps. 아거님 블로그에 ‘디카’님이 답글을 다셨다. 게다가 내가 올린 글타래 링크도. 우연이 아니다. 맥북 에어… – -b

[composed and posted with ecto]

Ecto for Mac OS X

Friday, March 14th, 2008

놀랍게도 본문이 들어가지 않는다!

(more…)

For Who?

Thursday, March 13th, 2008

내 얘기 쓰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엑토 윈도용도 좀 이상하고…

[composed and posted with ecto]

Flock Browser – The Social Web Browser

Friday, February 22nd, 2008

Flock Browser – The Social Web Browser

이건 시험삼아 올려 보는 글이다. ‘플록’. 굉장하다. 문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이뤄지고 어느 정도 범위와 지지를 받는 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 복잡성에 대해 기껏 이해하고 공부하면 새로운 복잡함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들어 붙어 ‘마스터’할 자신은 있는데 마스터를 위한 공부가 될 뿐, 정작 이용을 위한 공부는 안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플록은 파이어폭스 기반의 브라우저로, 어제부로 블로그며 뭐며 새 단장을 하고, 이제까지 읽어 ‘버리는’, 즉 읽고는 다시 안 찾을 듯 지나쳤던 온갖 현상에 대해서 좀 달리 취급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연장선에서 발견한 ‘물건’이다. 이렇게 블로깅도 바로 가능하고…

테마(껍데기)는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고 각종 ‘캔디바’류의 아이콘도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제까지 잘 써온 네비게이터를 버리고 파폭 베타 3로 사무실에서 사용할 업무용 브라우저를 옮기는 작업을 하면서 비업무용 브라우저로 사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

한번 시도해 볼만하다. 다만 미국 쪽 서비스를 주로 써야 제 맛이 날 듯 하다.

Blogged with the Flock Browser

A New Life

Thursday, February 21st, 2008

새 단장을 했습니다.기록의 의미를 다각도로 모색만 하다가는 기억 저편으로 모두 날려 버릴 수 있겠다는 위기감도 들었습니다.

‘퍼블리시’, ‘발행’을 한다는 의미에서 과연 블로그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 지 어렵기만 합니다. 일단 시작하고 계속 깎아세워봐야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블로그를 여러 개 개설합니다. 진중함과는 거리가 있는 제 게으름의 소치로 언제나 결정이 늦지만 이번에는 좀 달리 가 보고자 합니다. 아이폰 블로그는 제 일상의 편린이 담긴 그릇입니다. iTS 블로그는 제가 지난 10여 년 동안 쌓은 게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만들었습니다. ‘Loves’는 제 가족만의 폐쇄적 형태로 갈까 합니다. 100년. 제 인생의 궁극적 모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