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Archive

서태지가 불쌍하다 2

Sunday, July 27th, 2008

1992년. 그가 세상에 나왔다. 자못 심각한 얼굴의 ‘아이들’도 대동하고 무소불위의 삼위일체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음악지도를 바꾼 서태지.

내가 처음 그에 대한 접점을 만들었던 것은 3집이었다. 통일을 노래한 ‘발해를 꿈꾸며’를 들으며 머리에 뭔가 맞은 듯한 느낌을 가졌다. 기억하기로는 당시 그의 ‘통일 염원’은 그저 상업적인 몸짓에 다름아닌 것으로 평가 받았던 것 같다. 팬들이야 응당 엄청난 성원과 지지를 해 주었겠지만 대중과 매체는 인색했다고 할까… 참고로 그 때는 김영삼 정권 초기였다. 당시 통일이란 말은 어떤 취급을 받았던가… 하지만 난 그의 통일에 대한 접근이 좋았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방식으로 그저 소박하게 자기가 잘 하는 음계의 나열로 접근한 그 방법. 모든 길은 다 로마로 통하니 그저 자기가 맘에 들고 잘 갈 수 있는 길로 가겠다는 그 방식과 생각이 옳아 보였고 부러웠다.

이후 2집도 사고 4집으로 이어가는 등 그의 음반은 거의 모두 ‘구비’ 하는 수준으로 좋아하기에 이르렀고 각노래에 내 아이튠스 별점도 매우 후하게 매겨졌다.

은퇴와 컴백을 반복하면서 독집으로 세 장의 앨범을 추가 했으나, 그에게 ‘문화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미디어에 의해 부여되어 가는 그 즈음, 갑자기 서태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돈을 얼마 벌고 몇 년에 한번 던지듯 내 놓는 앨범의 함량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서가 아니다. 사실 완성도는 그에게 당연히 기대해야 하지만 그가 구축한 대한민국 음악 속 위치는 사실 천재적인 음악가로서라기보다는 당시 시대가 요청한 부분에 가장 근접한 형태로 이뤄졌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음악적 완성도는 그다지 내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내 기대는 질 좋은 음악(도 중요하지만)보다는 그가 갖는 사회적 발언권이었다. 9시 저녁 뉴스의 최초 뉴스에 오를 수 있는 그의 영향력은 결코 그 혼자 구축한 것이 아니다. 사회가, 대중이 그에게 보낸 직간접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한 지지를 오로지 컴백 앨범 판매고로만 확인하고 몇 달의 활동만으로 갚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http://link.allblog.net/6774397/http://raonsky.com/tt/510

오늘 15주년 앨범이 발매되는가 보다. 어떤 내용일지보다는 얼마나 머무르다 갈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소박한 한 청년일 뿐이라고 강변하며 그저 사랑하는 팬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렵게 피 흘리며 날선 칼 만들어 보호하고 끝내 담덕 손에 쥐였더니 난 그 정도가 아니라고 내 빼는 모양이랄까… 서태지. 넌 쥬신의 왕이란 말이다.

(일부 맞춤법과 어투 수정)

위 글을 쓴 게 작년 11월 29일이다. 오늘 읽은 http://ozzyz.egloos.com/3840170 이 글을 읽다보니 생각나서 다음 검색을 해 봤다. 허허… 내 글은 안 보이고 펀글이 보인다. 묘하네. 펀 글이라니… 하긴 당시 위 글 쓰고 해당 카페 접속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어쨌든 펀 글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할 것 같은 감정?) 과 아련한 기분 좋음이 겹치는 ‘이 기분’이란… ((지난 목요일을 기점으로 당당히 공부해서 쏟아 낼 수 있게 됨을 다시 한번 감사할 수 밖에. 앗싸! 3년만 기둘려줘~))

블로거 오지 ((http://minoci.net/548)), ((이전에 언급한 내용))의 위 블로그는 댓글이 많이 달릴 수 밖에 없는 글이다. 이슈가 될 것임 틀림없는 내용이며 멍석을 깐 마당이 또한 자체로 이슈다. 답글이 주르륵 달리는 것은 그 블로그의 특성이니 굳이 트랙백을 달아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ㅎㅎ

서태지. 15주년 앨범에 이어 새 앨범이 나온단다. ‘나온단다.’, “나온단다.” 큰 따옴표까지 넣은 것이 지금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방법이다. 도대체 대우 자동차는 뭐야. RC 자동차 취미에 GM이 스폰서로서 도움이 되었나, 설마?

‘신한과 함께 한다는’ 배용준의 “큰 성공”-유재석, 이건 또 뭐야! 큰 성공이라니…-은 바로 돈 얘기다. 기백 억을 1년에 번다지. 이 정도 돈 가지면 남한테 아쉬울 소리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서태지. 그 정도는 아니어도 역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왜… 왜 대우 자동차냐, 서태지?! 제길, ‘큰 성공’, 따라 쓴다만 역겹다.

조영남. 노래만 들으면 눈물 빼는 실력. 그러나 손뼉치며 넘어가는 그 과장된 행동 ((나중에 계산 된 것이었음을 인터뷰에서 밝힘))이 여전히 첫번 째로 떠 오르고 가정사에 굴곡이 졌다는 대목에서 인상이 찌푸려지며, 이젠 한국에 정착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단계. 가수, 화가, 딴따라, 입담 등 빠지지 않는 ‘개인기’가 역시 고금을 막론하고 연예인에게는 필수이자 밥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화려한 ‘업적’을 뒤로 하고 ‘이제는 라디오 시대’를 외치며 오직 오후 라디오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의 조영남.

서태지. 영상만 ‘뛰지말고’, 입심도 늘었는지 보여줘. ‘별밤지기’ 정도만 된다면 16년 전 탄생과 그 영광을 평생 내 청춘의 소중한 기억으로 돌려 놓을테니… 아마도 입심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에서 언냐들한테 전수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Test

Wednesday, July 23rd, 2008

Test
by WordPress on iPhone

아이폰용 워드프레스가 나왔다. 어제 나온 것 같은데 계속 에러만 뱉어낸다. 요즘도 이런 어플이 있나 싶었지만 역시 한글이 문제였다. 영문으로 ‘Test’라고 쳐 올리니 바로 올라간다.
with Ecto on Mac OS X

거대한 발걸음; 아이라이프를 보내며…

Thursday, July 10th, 2008

1990년대 후반의 웹 열풍에서 오늘 날 플랫폼으로서의 웹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리어 2001년 발표된 디지털 허브 전략과 파워맥 G4 큐브 발표는 아이맥에서 시작된, 미적 감각이 극대화된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이어가려는 애플의 전략이다, 라고 평가하는 것이 당시 분위기를 잘 반영한 분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넷은 이러한 하드웨어의 판매를 위한 날개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이런 애플의 모습은 70년대 개인 컴퓨터 시대를 열어 80년대 대중화된 개인 컴퓨터 시장을 활짝 만개시킨 애플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당연한 귀결이고 이후 비컴퓨터 기기 분야에서 커다란 성공으로 자리매김한 아이팟으로도 이어지는 애플의 비약적인 재기 모습입니다. 이후 하드웨어와 디자인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재료가 바로 애플과 아이팟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혹 iTMS(2003)를 아이팟 성공의 첫째 요소라고 보는 분석이 있지만 이것은 ‘달 대신 손가락’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팟의 성공은 이미 2001년 발표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애플의 거대한 전략, 디지털 허브의 단초로서 아이팟은 등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발표된 디지털 허브는 지금 시각으로 본다면 매우 당연한 일상이지만 당시에는 애플의 하드웨어 판매를 위한 선전 문구라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맥 오에스 텐 이전부터 디지털 환경을 준비하는 모습-아이무비(맥오에스 8, 1999), 아이튠스(맥오에스 9, 2001)-을 고려할 때 이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닙니다.

아래 비디오 링크는 2001년 5월에 발표된 아이북 광고 클립입니다.

아이북 광고 중에서 유명한 이 광고를 보고 저 빛나는 흰색 애플 마크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음악과 사진, 비디오 클립을 엮어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광고 주인공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군요!). 위 광고는 디지털 허브 개념을 손에 잡힐 듯한 일상으로 잘 포착하여 사례화 시킨, 잘 만든 광고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하드웨어가 여전히 중요해 보이고 그 매혹에 못 이긴 구매 행동을 자연스럽게 합리화 시키기 위해 미디어 속 주인공과 나를 일체화하는 경험을 선사해 주기도 한 광고였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디지털 허브 전략을 이어가며 애플은 2003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라이프를 발표합니다. 당시 맥 오에스는 10.1이었습니다. 아이라이프는 이름 그대로 우리 일상에 그대로 스며들 듯 사용될 수 있는 애플의 역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악, 사진, 비디오 등의 재료를 가지고 몇 번의 클릭과 쉽고 재미있는 작업 과정을 거치면 그야말로 일상 생활을 고스란히 디지털화 시킬 수 있었고 이러한 ‘작품’은 거실의 티비와 주변 사람들에게 편하게 나눠 줄 수 있는 시디 형태로 ‘발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래 비디오 링크는 2004년 1월 아이라이프 발표 중 개러지 밴드 부분입니다.

이 클립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키노트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키노트를 컴컴한 피씨방에서 윈도용 퀵타임으로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개인적으로 개러지 밴드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지만 이 클립을 보면서 애플의 갖는 우리들 일상에 관한 상상력에 감탄하고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보편화된 일상으로 음악과 사진의 디지털화가 받아들여지는 시점에서 ‘창작’의 일반화를 우리가 꿈꿀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애플에게 하드웨어는 그 자체로 기업의 핵심 영역이자 영혼입니다. 허브로서의 맥, ‘아이 + 라이프’를 즐기는 도구로서의 맥이 애플이 추구하는 바였던 것입니다. iTMS, iTunes 등 아이팟을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여러 환경이 제공되기에 앞서 아이팟은 그 흰 색과 은빛 뒷모습의 102% 조화로움을 가진 예술 작품 그 자체였습니다.

아래 비디오 클립은 2001년 가을 잡스가 아이팟을 처음 대중에 선 보인 작은 이벤트 모습니다. 배터리에 관해 설명하는 잡스의 눈을 한번 보시죠. 음악을 담는 그릇이 어떠해야 하는지 애플은 철저히 연구하고 또 연구했던 것입니다.

당시 환율이 굉장히 올라서 399불짜리 아이팟이 국내 가격으로 79만원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엄청난 가격이었지만 중고 매물을 매일 뒤지며 그 우아한 모습을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싶었죠.

2008년 1월, 애플은 맥북 에어를 발표합니다. Air. 공기처럼 가볍다는 뜻도 좋지만 Wireless를 대신하는 말로 쓰임새가 돋보이는 작명입니다. -less는 뭔가 없음을 뜻하는 접미사입니다. 에어에는 뭐가 없을까요. 무게, 배터리 착탈불능, 광드라이브 등등 없는 것 투성입니다. 아래 클립은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은 바로 이렇게 ‘빈 노트북’임을 보여줍니다. 즉 진정 얇고 가벼워지려면 없애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애플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기본 개념에 충실하되 그 빈 곳을 절묘하게 채우는 다른 수단과 개념의 제시 전략을 잘 보여줍니다.

에어에 없는 게 또 있습니다. 바로 하드 디스크 용량입니다. 테라 바이트가 우습게 회자되고 오로지 성능과 용량으로 치닫는 컴퓨터 산업의 흐름에서 ‘역주행’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 맥북 에어는 기실 인터넷 열풍이 막 태동하던 시점에서 제창된 NC 개념의 변주라고 할 만합니다. NC의 핵심은 디스크가 없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연결성이었습니다. NC가 너무 시대를 앞서 갔다는 아쉬움을 맥북 에어는 애플과 잡스 특유의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새롭게 개념을 세웁니다. 하드 디스크는 온존하되 용량을 최소화하고 연결성은 극대화 시키되 무선으로 바꾼 것입니다.

따라서 2000년대 초 허브로서의 맥에서 간편한 ‘연결 지점’으로서의 맥으로, 새롭게 애플의 하드웨어 개념을 정립하고자 하는 첫 주자가 바로 맥북 에어이며, 이런 의미에서 NC의 변주라기 보다 새로운 NC 개념을 세웠다고 평가해야 옳을 것입니다.

연결성의 극대화는 아이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분화된 기종 별 오에스 텐 개발팀의 사례에서 보듯 애플은 ‘getting connected’ 환경에 최적화되는 여러 기기를 선 보이고 그에 맞는 오에스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갑니다. 아이팟의 성공을 전화기와 융합하여 새로운 분기점으로 삼아 연결성에 기반한 맥과 휴대기기라는 양 산맥 하드웨어 전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의 최종 마침표(당분간이나마)는 바로 오늘 발표된 ‘모블 미’ 서비스입니다. 우선 개인정보, 전자우편, 사진 등을 실시간으로 연결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로 시작하는 모블 미는 구글의 모습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82197

위 책은 ‘이쪽 편’ 대 ‘저쪽 편’의 관점으로 최근 구글로 대표되는 소위 ‘2.0 시대’에 대한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마이크로소프트로 대표되는 ‘이쪽 편’과 구글로 대표되는 ‘저쪽 편’이 존재하고 역사는 ‘저 쪽’으로 흘러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연결’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시장과 우리의 생활을 바꿔 가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애플은 어느 쪽일까요.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제조업의 강자라 할 ‘완고한 일본’과 더불어 70년대 출발하여 80년대 만개하고 어려움과 새로운 도약을 한 90년대를 거친 애플도 전통적인 ‘이쪽 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플은, 애플의 하드웨어는 ‘지는 해’로서 서서히 기울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애플은 이미 위에서 살펴 보았듯 어느 샌가 ‘저쪽 편’ 기업으로 방향을 틀었고 애플의 ‘이쪽 편’ 하드웨어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저쪽 편’ 서비스에 맞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 가시적인 출발이 바로 맥북 에어와 아이폰인 것입니다. ‘저쪽 편’의 대명사 구글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 엄청난 수의 서버를 돌리고 있습니다. 애플은 눈에 보이는 서버의 모습으로 (백업이라는 개인적인 용도를 내세워) 타임캡슐을 은근히 시작했고 어느 새 무선 연결을 대세로 만들었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하드웨어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 지점을 서서히 우리 생활 속에 구축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 애플은 디지털 허브와 아이라이프의 도구로서의 맥이 아닌 연결 도구로서의 맥을 만들고 있는 ‘저쪽 편’ 기업입니다. ‘Back to My Mac’으로 외부에서도 집에 있는 내 맥과 서버(타임캡슐)에 접속할 수 있고, 내 정보와 사진 등 디지털 미디어를 언제든 웹과 연결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 20기가에 달하는 홈 폴더를 제공합니다(모블 미).

이제 아이라이프를 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여자친구에게,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밤 새워 비디오 클립을 편집하기 보다 간편한 휴대 기기로 날 것 그대로의 클립을 유투브에 올려 공유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수십 기가에 달하는 음악을 하드 디스크에 채워 넣고 셔플 기능으로 원하는 음악을 찾기 보다 그냥 집에서 동기화 연결로 채워진 아이팟 셔플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음악, 사진, 영상 등 관리가 수반되고 노력이 더해져야 빛을 발하는 ‘My Life with iLife’는 이제 ‘My Life, always connected’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원하는 음악은 아이팟/폰으로 바로 구입해 듣고 사진은 그대로 내 홈피에 올려집니다. 편집의 노력은 이제 ‘대중(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거나 좀 더 ‘프로-암’다운 작업에 어울리는 다른 도구로 이뤄질 것입니다. 맥북 에어의 액세서리가 텐서브, 맥 프로, 아이맥이라는 말은 전혀 농담만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모블 미. 이제는 ‘저쪽 편’에서 건재한 애플의 새 서비스는 ‘활동적인 나’, ‘나를 움직이는 그 무엇’으로 개념을 잡아갈 것입니다. 그 움직임은 여전히 맥을 통해서, 아이폰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다만 그 역할을 하게 되는 맥은 허브가 아닌, 삶의 동반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less적’ 맥(/아이폰)이 될 것입니다. ‘왼손은 그저 거들 뿐…’처럼 맥은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와 미디어를 전달해 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도구의 우아함은 결코 저쪽 편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 손 안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http://albireo.net과 http://doccho.net에 발행됩니다.

Being Back

Tuesday, July 1st, 2008

두 달 반만의 포스팅. 최근 두 달처럼 내 본질에 대해 진지한 접근을 한 적이 있던가… 고마운 경험이다. 아래는 테스트

test ISBN

[genie 8990982197]

CIL 시험

Wednesday, April 16th, 2008

CIL 시험

썰물과 밀물

Friday, March 28th, 2008

커뮤니케이션의 딜레마와 관객들의 변덕 : 올블 사태에 부쳐

민노씨민노씨님 ((아이디 부르는 방법, 나아가 직함 붙여 이름 부르는 관습에 대해서는 향후 포스팅 하고 싶은 주제임))께서, 기대 한 바대로 굉장히 잘 정리해 올려 주셨다.

들 때가 있으면 날 때도 있는 것이겠지. 어제 일찌감치 쌍방 당사자 ((희주, 올블))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됐고, ‘아랫 벽돌 빼내기’와 그 행동에 대한 ‘고려 없음(나아가 해 본적 없음까지)’을 확인하고 크게 실망했다. ‘골 빈’ 블로깅에는 어이 없음까지…

블코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 다음 블로거뉴스나 이올린이 대안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평소 자근자근 씹어대는 사람의 블로그를 가 보는/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야금야금 올블에 계속 들락날락 할 것 같지만, 일단 회원 탈퇴는 했다. 보통 탈퇴에 따른 아이디 복구가 안되기 때문에 비슷한 경우 ‘마음으로부터 지우기’만 해 왔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리 느끼게 된다.

가만 결론을 내려보면 내 이 모든 행위의 A to Z는 블로그라는 매체에, 그 중 하나, 그 대표 선수격인 올블에 대한 애정에 있지 싶다. 남들 간다고 따라 가는 성격은 절대 못 되지만 이번 ‘썰물’엔 일단 동참한다. 언젠가 밀물처럼 들어 오고 싶을 때가 분명 있으리라는 기대도 함께 하며.

‘블로그(거)의, 블로그(거)에 의한, 블로그(거)를 위한’ 올블. 그 정신을 살려/살리기 위해 제대로 아파하기 바란다.

사파리와 워드프레스

Friday, March 21st, 2008

본질 문제를 계속 붙들고 있는데, 웃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난 피씨(a.k.a 아범)를 쓰면서 내 자아에 손상을 입는 경험을 한다. 도무지 내가 설정하고 있는 논리적 사용 환경에 부응하지 않는 이 운영체계가 90% 넘는 세계적 점유율, 게다가 98%가 넘는 한국의 운영체제 점유율을 갖고 있다는 게, 또한 대항마가 여전히 빈곤한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아이팟의 비약적인 성공이 윈도 사용자들을 끌어 들이면서 시작됐다는 사실도, 애플을 좋아하는 사용자로서 마음이 아픈 사실이다. 편 가르자는 얘기는 아니다. 자신의 환경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의 일종인데, 그렇다고 맥 사용자=진지, 명석하고 윈도 사용자=무뇌아, 이런 공식에 대한 얘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갖는다면 저렇게 90%가 넘는 점유율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무 대중에 대한 폄하를 하고 있는 걸까, 윈도 쓰는 대개의 사용자들이 별 고민 없이 선택했다라는 전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나 자신도 10여 년 전까지 열렬한 윈도 사용자였고 그 경험에 비춰볼 때, 또한 다양한 인간 세상에서 선택의 결과가 90%가 넘는 비율로 나타날 때,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는 ‘품목’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 컴퓨터 운영체제, 윈도는 분명 그 답이 아닐 것이라 생각이 된다.

어쩔 수 없는 사무 환경에서 수 개월 여 윈도를 쓰면서도 내내 헛바퀴도는 심정일 때가 많다. 해서 마련한 나름의 최저선은 맥오에스와 비슷한 환경으로 윈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가령 파이어폭스, 플록 등의 어플이 일차적인 선택이 되고, 다행히 요즘은 웹 환경에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구글, 딜리셔스, 플리커 등 웹 환경이 이차 ‘저지선’으로 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내 윈도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내 ‘자아붕괴’ 현상은 이렇게 근근히 발생 전 단계에서 두 단계 저지선 덕을 보고 있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일단 파일 관리 등의 차이는 정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포기하더라도, 이메일 관리와 웹 브라우저의 선택 문제이다. 자잘하게는 맥오에스의 익스포제 환경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고.

이메일 관리는 최근 닷맥 주도적 환경에서 지메일 환경으로 완전 이전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고민을 하고 있다. 나중에 따로 관련 글을 쓸 일이 있을 것이어서 생략하고, 웹 브라우저의 문제가 남는데 그게 이 글의 주제이다.

맥에서는 고민없이 사파리를 사용한다. 파이어폭스 3 베타4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업무용 페이지를 집에서 열 필요가 있을 때, 사무 환경을 고스란히 재연하고자 사용하는 것으로 최소한에 그친다. 최근 고민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플록인데(지금은 사무실 윈도 환경), 나름 ‘소셜 웹 브라우저’를 주장하며 각종 편의 사항을 담뿍 담고 있어서 자잘한 사용의 재미를 주고 있다. 아쉬운 두 가지 부분은, 기반이 되는 ‘파폭’이 3 버전이 나오는 시점에서 여전히 2 버전에 머물고 있고 1.1 버전 등 베타를 낼 때도 파폭 3 버전은 반영이 안되어서, 즉 파폭 3 버전 기반의 플록은 아직 먼 얘기여서 기다리가 힘들 것 같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맥용 파폭 3 베타 버전을 보면 사파리 대용으로 기대할만도 싶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유감스럽게도 맥용 플록은 맥용 사파리를 못 따라간다는 점이다. 반대로 윈도용 플록은 (이제 겨우 베타를 뗀) 윈도용 사파리보다 낫게 보인다.

윈도용 사파리는 며칠 전 업그레이드 돼서 베타 딱지를 뗐는데, 개인적으로는 화면 출력에서 마소 익스플로러나 파폭보다 더 마음에 든다. 속도도 나름 괜찮은 편이고. 아직 한글 관련, 특히 입력 부분은 답답한데 그럭저럭 참고 써 왔으나 오늘 발견한 워드프레스와 사파리 간 문제는 치명적이다.

워드프레스에서 사용되는 ‘비주얼’ 편집기는 오픈소스인 TinyMCE라는 데서 따서 쓴다는데, 이 편집기가 사파리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사파리에서 글을 편집하고 단락 구분을 주면 그 부분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려 글 전체가 ‘통문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기껏 잘 편집해 올려 놓고 무심코 사파리로 편집을 할라치면 갑자기 답답한 ‘통글’이 화면에 펼쳐지는 것이다. 책임 소재는 의견이 나뉘는데 구글 검색으로 알게 된 바로는 당장 해결책이 없을 듯 하다.

윈도는 그렇다치고, 맥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가 부딪힐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워드프레스의 대안과 사파리의 대안을 비교해 보면 일단 워드프레스의 승리. 맥에서는 다른 글 편집 방법을 써야 하겠다. 사파리가 좀 더 ‘본질스러운’ 어플이겠으나 원칙만 내세우는 옹고집보다 예외를 둘 줄 아는 지혜란 여기다 갖다 붙혀도 되지 않을까. 😆

엑토의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아닌 것 같다. 결국 ‘혐의’를 벗은 엑토를 잘 써 볼 수 밖에.

讀趙

Thursday, March 20th, 2008

, ‘읽는 나’, 이런 뜻풀이가 가능할까…

아래 아이디에 관한 내용이 담긴 글도 있지만, 언제나 본질의 문제에서 고심을 하게 된다. 케텔로 인터넷의 본류에 뛰어 들면서 20대 초년의 ‘어린’ 나이임에도 아이디에 관한 고민이 먼저 됐다. 요즘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서 주위를 보면 아이디를 정함에 그리 고민이 없는 것 같아 의아할 때가 있다. 물론 붙잡고 물어보면 다들 이런저런 이유가 있는 작명법을 내세우지만 평범한 숫자 조합이나 큰 의미를 갖지 않은 아이디로 정하는 경우를 왕왕 본다.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93년 초였지만, 폭발적 인터넷 사용의 흐름은 9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이뤄진 게 맞을 듯 싶다. 당시 다니던 대학에서 학교 계정을 자유로이 만들게끔 정책을 바꿔 시행을 시작했다. 원래는 도무지 창의적인 안을 낼 수 없게끔 아이디를 배포했던 기억이다. 학생들 아이디에는 정한 이름 뒤에 반드시 숫자를 넣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헌데 바뀐 정책에서도 ‘장유유서’ 덕분인지 아이디 만드는 시기에 학교 구성원 간 차등을 두었다. 교수, 교직원 먼저 만들고 학생은 나중에 만들게 한 것이다. 즉 먼저 교직원, 교수가 아이디를 만들면 나중에 학생은 원하는 아이디를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디 조합 체계는 대개 이름의 영문자 이니셜을 따랐을 때이기 때문에 겹치는 사례가 많을 것 같아 고육책으로 낸 듯 했다. 그리곤 중복된 아이디를 신청하면 숫자를 임의로 붙이거나 다른 아이디로 유도했던 것이다.

내 아이디는 다행히도, 꽤 고심하고 지은 노력 탓인지, 겹치는 아이디가 아니었다. 사실 흔한 조합이긴 한데 dr은 생각해도 doc는 생각들을 안 한 모양이다. 지금도 새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으니, 가장 ‘타격’이 큰 것은 네이버다. 웬만한 서비스는 다 ‘점거’를 했지만 네이버를 그닥 써 오지도 않았고 네이버에서 계정을 만들게끔 한 사실도 알지 못 했다. 타격이 크다는 것은 매우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다는 것보다 괜한 ‘상실감’, 미리 움직이지 못한, 빼앗긴 듯한 아쉬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써 놓고 보니 매우 유치한 생각인데…

그럭저럭 짧은 이메일 주소와 원하는 아이디를 얻은 탓에 ‘자랑스레’ 학교 아이디와 전자우편 계정을 잘 사용해 왔다. 지금도 쓰고 있는데 대개 스팸 편지가 우려되는 항목에 이 계정을 사용한다. 워낙 오래 된 것이다보니 스팸이 태반인 계정이다.지금 생각해도 아이디에 대한 내 결정은 잘 된 듯 싶고,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다. 괜히 ‘우쭐한’ 듯 해 보일 지 몰라도 실상 내 꿈과 오랜 훗날의 내 모습을 계속해서 투영해 보는 소중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루에 내 아이디를 몇 번이나 자판에 쳐 넣어 보는지 세 보진 않았지만 족히 수십 번은 될 듯 싶다.

십수 년의 인터넷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개념과 기술, 서비스의 등장으로 나날이 새롭고, 또한 혼란스러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나름 따라잡으려 노력도 하고 취사선택을 통한 선택과 배제의 논리를 만들어 절제를 하곤 있지만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갈망은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한겨레를 중간에 일년 반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결혼 전부터 꾸준히 구독하여 매일 아침 40분 내지 한 시간여를 변기 위에서 읽는 것 + 알파를 시행하느라 아내와 장모님의 ‘조 서방 딴 집 살림’이라는 비난도 마다 않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아내에게 나중에 서점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가 결혼 초기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반 진반의 웃음기 약간 섞인 ‘씨츄에이숀’도 있었다. 또한 그걸로 부족해서 첫번째 인터넷 신문이라는 모 사이트에서 열독자를 뽑았다면 초기 구성원으로 족히 명함을 들이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아침 신문과 9시 뉴스 시청 외에는 많이 줄여 오고 있었는데, 최근 블로그, 블로깅에 대한 고심의 결과로 RSS 구독도 조심스레 시작해 보고 있다. 헌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피드’(공급)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일단 돌아다니면서 선정하여 열 개 안쪽으로 구독을 해 보고 있다. 하루에 열 개 안팎의 새 글이 등록되는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블로깅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담는 행위이기 때문에, 또한 요즘 정보에 대한 ‘대우’는 최소한 출처의 링크 내지 인용이 기본적 소양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하나의 글 속에 걸린 링크까지 본다치면 새 글의 수는 급격히 늘어난다. 인용된 링크는 또 어떤가.

결국 절제에 대한 원칙이 없으면 계속 바다에서 허우적 대는 셈이 된다. 이걸 체계적으로 해 보기 위해 구글 북마크, 딜리셔스를 번갈아 써 보고 있는데, 일단 하나의 서비스에 ‘올인’하는 것이 향후 편한 환경 구축에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지라 그런 서비스 자체에 대한 ‘심사’도 병행해야 한다. 물론 알비님의 포럼에 들르는 것과 글타래 읽기와 답글 달기, 관련 해외 정보 살피기 등은 기본 중의 기본적인 사항이다.가히 ‘읽는 중’ 팻말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할 지경이다.

‘개점휴업’이었던 지난 독초닷넷 블로그에서는 doccho의 해석을 홀로 독, 독 독 등의 음산한 의미로 파생시켜 보고자 했는데 이젠 자연스레 ‘읽을 독’의 독이다.

읽는 나. 읽고 있는 나. 내 본질에, 내가 원하는 모습에 한 발짝 가까이 간 모습이다. 블로깅이 내 본질을 향한 여정, 진리를 향한 여정에서 훌륭한 도구가 되고 있다.

교육과 ‘사회적 인터넷’의 접목

Tuesday, March 18th, 2008

‘소셜 네트워킹’ = ‘사회적 인터넷’이라고 하면 어색할까요. 내용을 적기에 앞서 용어에 대한 고민을 해 봅니다. 기왕이면 우리 말로 옮겨보고 의미를 되짚어 보는 버릇을 갖고 있는데 범람하는 ‘영어(를 그대로 발음으로 옮기는) 한글’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학문을 앞장세워 얘기 해 보면 작게는 용어, 크게는 학문적 언어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그 문화적 역량을 엿볼 수 있고 그 학문이 그 문화배경에서 어떻게 뿌리 내리고 연구되고, 활용 되는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영어에 대한 ‘맹종’은 개인의 문제라고 왈가왈부할 수준을 훌쩍 넘어서서 전 (한국)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최근의 ‘오륀지’ 발음 ‘사태’는 그 실상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는 것이겠고요.

http://gatorlog.com/?p=890

굳이 영어교육이라고 한정하신 이유를 정확히는 몰라도 일단 보편타당한 ‘상식’선에서 한국 사회에 접목할 수 있는 현실적 서비스는 영어의 한계를 벗어 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잠시만 교육 관련 서비스에 대해 신경 쓰고 싶은 게 제 희망이지만, 어쨌거나 발 딛고 서 있는 상황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제라서, 또한 다른 데 개설한 블로그의 주제가 iTunes Store에 대한 것이다보니 팟캐스트, 그 중에서도 iTunes U 서비스에 대한 글을 써 볼까 생각하던 중, 위 글을 접한 김에 평소 생각한 바를 풀어 내 보고 여러 각도에서 공유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위 글에서 어학과 기술의 접목이 썩 재미를 못 본 이유로 피드백, ‘디지털적 사고’의 부재가 언급되었는데, 이러한 것은 점점 더 자라는 인터넷 기술과, 제가 그리도 좋아하는 애플의 기술이 접점을 이뤄 새로운 효과와 시장을 훌륭히 창출해 가고 있는 중이고 극복될 조짐이 보이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언젠가 꼭 써 보고 싶은 주제인데) 아이팟의 등장과 iTunes의 거대한 톱니바퀴 체계는 정작 애플 자신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라고들 할만큼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에 따라 작은 톱니바퀴들이 여러 군데, 여러 개, 여러 모양으로 계속 발생과 분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스탠포드 대학을 필두로 iTunes U 서비스의 등장은 비록 작게 시작은 했지만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팟캐스트 또한 아이팟-아이튠스 성공의 열쇳말로 앞에 등장할만한 주제인데 사실 iTunes U는 팟캐스트의 새로운 서비스 형태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재 진행되는 것으로 봐서는 단순히 ‘Pod(꼬다리)’ 속에서만 꿈틀거리기에는 등재되는 정보의 질과 양이 지금까지 우리가 인터넷에서 진행해 온 ‘모임(게시판)’, ‘검색’ 등을 훨씬 넘어설 수 있는 수준의 정보 유통원(근원 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될 정도로 근사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iTunes 얘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원래 주제인 교육과 ‘사회적 인터넷’의 접목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여전히 산업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한 교육이라는 주제와 ‘사회적 기술’, ‘사회적 공유’, ‘사회적 인적 관계’ 등의 용어를 ‘매치’시켜 보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그리 많이 언급될만한 ‘뜨거운’ 주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까지 확인됐던 바로는, 국가 기간 사업이라 할 수 있는 통신업체인 하나로통신을 넘어 시가총액 기준 코스닥 2위로 뛰어 오른 업체가 다름아닌 메가스터디라는 사교육 업체라는 사실을 볼 때 선뜻 이해가 안 될 수 있는데, 메가스터디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소위 ‘2.0’ 시대의 참여와 공유라는 열쇳말에서 파생된 서비스 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메가스터디의 서비스는 그저 오프라인 학원 서비스가 좀 더 큰 ‘학생 대중’을 상대로 온라인 형태로 강의를 팔고 사는 형태로 ‘둔갑’ 했을 뿐이고요. 게다가 제공되는 동영상도 스튜디오 강의 위주로 하던 것을 현장 강의를 그대로 동영상화한, ‘오프라인, 온라인인 척 하기’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사회적 인터넷’에서 필요한 것이 피드백과 디지털 기술의 적절한 사용에 있다고 한다면 교육과 접목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메가스터디의 현란한 ‘홈피’는 그저 미미한 수준의 댓글이나 기존 게시판 형태로도 충분한 질문/답변의 마당만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기술은 그나마 타 경쟁업체보다 낫긴한데 단순함의 미학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고요.

하물며 ‘사회적 인터넷’을 언감생심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몰라도 비슷한 시도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약간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공부가 적어 정확한 지 잘 모르겠지만) 소위 ‘오픈 마켓'(열린 시장?)도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고객 접점을 형성하면서 성장해 온 것이라 전제한다면 이베이나 옥션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지마켓의 존재도 상당할 것입니다. 2년 전 지마켓에서 영어 교육과 관련한 신규 사업 진출을 기획하며 인력 충원을 했는데 ‘황송하게도’ 면접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열린 공간’이라는 지마켓의 핵심역량과 영어 교육을 어떻게 접목시킬 지 나름 생각도 해 보고 구상도 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중에 신문 한 면에 작게 동정 기사 정도로 소개 된 걸 보았고 썩 잘 된 기획이 아니었나하고 생각했지요.

위 아거님 글에서 타고 간 뉴욕타임스 기사에 소개된 라이브모카, 그 정도의 기획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시기 문제였을 수도, 내용 구성의 문제(윗 라인 최종 결제라는 게…)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교육이라는 게 일방적인 전달로만 인식하는 게 여전한 우리 인식의 수준인 것은 사실이고 뭔가 달라질 만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 순간 다시 10년 전,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 놓고 싶어하는 세력이 온존하는 것도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 가운데 ‘SNS+edu’라고 외친다면 그건 ‘지식 보부상’에 지나지 않는, 50여년 이상 지식의 샘에 걸터 앉아 ‘삥 뜯고’ 있는 그런 부류의 일종이 아닐까요. 하긴 거리 이름인지 새로운 흐름인지 몰라도 책 이름 하나로 ‘신세 고친’ 신데렐라들도 있는 것을 보면 ‘이슈 선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따라서 일단 “사이트부터 올려”놓고 보라거나 “리포트부터 만들라니까” 하는 이야기가 귀에 쟁쟁하게 걸리는 제 현실이 그리 허황된 것만은 아닐 듯 싶습니다.

모래밭에서 놀면 신발, 옷에 모래 들어가고 도서관에서 놀면 옷깃을 여미며 발꿈치 들고 다니는게 현실이니 좋은 기획이 있으면 여기 대한민국에서도 교육 사이트 하나가 훌륭히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 가는 장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적 상황’을 운운하는 미디어가 넘쳐나는 가운데 속속 ‘한글화’ 메뉴로 상륙하는 미국의 서비스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교육 서비스도 그리 되는 게 빠른 길이 아닐까요. ‘혓바닥도 서양인처럼’ 빼 준다는 뉴스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말입니다. ‘한국적 상황’을 운운하면서도 ‘발음은 미국인처럼’ 해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한 말이죠.

ps. 아거님의 글 링크를 계속 걸게 됩니다. 요즘 애플/맥만으로 기술을 들여다 보던 것을 좀 확장해서 살피다 보니 그동안 지나쳤던 주옥같은 자료들에 대한 ‘다시보기’를 한다고나 할까요. 아거님의 글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 티를 내는 것이고요. ^^;;
글 쓸 때 독백인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구분하는 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경어체로 적어 봅니다.

[composed and posted with ecto]

직업이 존재를 규정한다

Friday, March 14th, 2008

http://gatorlog.com/?p=943

제목 그대로 베껴오면 이상할 것 같아서 바꾼 제목을 달아 본다. 위는 아거님의 블로그 중 해당 글 주소.

도대체 뭔 소리?

(다행이다. 옆 자리 동료가 철학과 졸업자! 얻어 들은 바를 내 식으로 풀자면)

(아래 어디 글에서 내 아이디 얘기도 했지만) 이제껏 내 직업으로 내 존재를 알리겠다, 스스로 내 존재를 완성해 가겠다라고 생각하고 살아 온 나로서는 반대로 생각해 본다. 존재로 직업을 규정해 갈 때는 아니지 않을까. 앎의 끝이 어디일까. 내 존재를 완전히 안다는 게 불가능한 현실에서, 즉 나날이 새로운 나를 느끼며 (대개 타협적, 비겁함으로 바뀌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내 존재의 ‘존재’에 대해 놀라는 현실에서 ‘나’를 앎으로 ‘행함’을 이뤄가겠다, 완성해 가겠다 하는 것은 호사가 아닐까. 나랑 친한 ‘누구’ 말로는 ‘철없는 소리’라고 늘 면박을 주던데…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리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내 존재를 내가 규정함으로써 내 행위/삶에 대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누군가 내 존재를 탐구하고 내 ‘행위’를 규정해 주는 수고는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 아닐까. 똘망한 눈길로 ‘아빠’를 외치는 우리 두 넘의 아들들도 내가 넥타이를 멜 때와 청바지+운동화를 걸쳤을 때 회사, 학교로 아빠의 행선지를 구분하는 놀라운 직감/판단력을 가졌는데 과연 이들의 그런 이해와 ‘이해(배려)’가 어린 아이들이어서만이겠는가.

소통의 대상인 타인에게 내 존재를 봐 달라는 말은 내 짐을 져 달라는 소리로 들릴까 두렵다. 내가 뭘 하는지 봐 주는 관심/배려를 고마워해야 하는 세상이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 않은가. ‘나쁜 놈 홍길동은 도둑’이라는 말과, ‘도둑 홍길동은 나쁜 놈’이라는 말 중에서 어느 편이 와 닿는가. 세상은 후자에 더 편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타인을 편하게 배려하는 내 ‘존재’는 좀 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블로깅이, 새롭게 존재를 규정해 가는 도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블로깅으로 직업/행함을 만들어 가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직업으로 블로깅을 하면서 실착하는 사례도 보인다. 위에 친한 ‘누구’는 요즘 내 ‘컴퓨터로 읽는 행위’에 대해 잔소리가 현저히 줄어 들었다. 되려 잘 해 보라고 격려도 해 준다. 뭐가 될 지 노심초사 7년을 날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아 가라고 등을 떠 민다.

그럼 맥북 에어. 그걸 사야 한다. – -;; 내 존재를 규정해 주는 다른 고마운 툴, 애플. – -;;

ps. 아거님 블로그에 ‘디카’님이 답글을 다셨다. 게다가 내가 올린 글타래 링크도. 우연이 아니다. 맥북 에어… – -b

[composed and posted with ecto]